오늘의 聖人(3월 2일) 성녀 안젤라(십자가의)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09:37 ㆍ조회:630 ㆍ추천:0

오늘의 聖人(3월 2일) 성녀 안젤라(십자가의)  
    
     
    
    성녀 안젤라(십자가의)(Angela of the Cross) 축일 3월 2일  
    신분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연도 1846-1932년
    
     같은이름-곤잘레스, 마리아 데 로스 안젤레스 게레로 곤살레스, 안젤리따, 안젤리타, 앙헬라, 앤젤라, 엔젤라  
    
     
    
    십자가의 성녀 안젤라는 1846년 1월 30일 에스퍄냐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의 중심지인 세비야(Sevilla)에서 
    가난하지만 신심 깊은 가정의 딸로 태어나 천사들의 마리아 게레로 곤살레스(Maria of the Angels Guerrero Gonzalez)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미래의 성녀인 그녀는 집안에서 안젤리타(Angelita)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삼위일체 수도회에서 요리사로서 일했고, 어머니 역시 세탁실에서 일했다. 
    그들은 1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자녀는 6명뿐이었다.
    
    안젤리타는 신심 깊은 부모의 가르침과 모범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고 어린 나이부터 묵주기도 바치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종종 어머니가 본당에서 제대를 정리하는 동안 동정 성모의 성화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견되곤 했다. 
    5월 성모 성월이 되면 그녀의 집에는 동정 성모께 바쳐진 간단한 제대가 차려졌고, 그녀의 가족들은 묵주기도를 
    암송하며 성모님께 특별한 시간을 봉헌했다. 안젤리타는 8살 때 첫 영성체를 하고 이듬해에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녀는 정규 교육을 조금밖에 받지 못하고 어린 소녀 때부터 신발가게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인이자 신발 수선의 스승인 안토니아 말도나도(Antonia Maldonado)는 신심이 깊은 여성이었다. 
    매일 종업원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인들의 삶을 읽었다. 
    성당 참사회 회원인 세비야의 호세 토레스 파딜랴(Hose Torres Padilla) 신부는 안토니아의 영적 지도자로서 
    ‘성인을 만드는 분’이란 명성을 얻고 있었다. 안젤리타는 16살 때 토레스 신부를 만나 그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수도회에 들어가고 싶은 안젤리타의 소망은 커져갔고, 19살 때 산타크루스(Santa Cruz)에 있는 맨발의 카르멜 수녀회에 
    입회하고자 했지만 병약한 몸 때문에 거절을 당했다. 대신 그녀는 토레스 신부의 권고를 따라 콜레라에 걸린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콜레라 전염병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번졌기 때문이다. 
    1868년 안젤리타는 세비야에 있는 애덕의 수녀회에 다시 한 번 입회를 신청했고, 
    여전히 건강이 좋지는 않았지만 허락을 받았다. 애덕의 수녀회 수녀들은 그녀의 건강을 위해 
    그녀를 쿠엥카(Cuenca)와 발렌시아(Valencia)로 보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수련기간 중에 다시 애덕의 수녀회를 나와야 했고, 집으로 돌아가 신발가게에서 계속 일을 했다.
    
    토레스 신부는 안젤리타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따로 있음을 믿고 있었지만 그 계획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었다. 
    안젤리타는 1871년 11월 1일 십자가 아래서 복음 전도자로서 일생을 살겠다는 개인적인 허원을 발했다. 
    그리고 1873년 환시를 통해 새로운 사명을 시작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는 기도 중에 예수님이 
    매달려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는 십자가가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즉시 하느님께서 그 빈 십자가에 
    자신이 매달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 또한 
    그들과 함께 가난하게 되기를 요구하고 계심을 이해하게 되었다.
    
    안젤리타는 토레스 신부의 뜻에 순명하며 신발가게에서 계속 일하면서 자유 시간에는 상세한 영적 일기를 쓰는데 
    시간을 쏟아 부었다. 이는 하느님의 부르심대로 장차 그녀가 살아야 할 삶의 방법과 이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875년 8월 2일 세 명의 다른 여성들이 안젤리타와 합류했다. 그들은 세비야에 집을 하나 빌려 함께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그날부터 그들은 밤낮으로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돕기 시작했다. 십자가의 안젤라라는 수도명을 얻은 
    안젤리타 원장수녀의 지도하에 십자가의 수녀회(the Sisters of the Company of the Cross)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 
    있지 않을 때는 확실히 세상을 떠나 관상 생활에 전념했다. 그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기도와 침묵을 엄격히 지켰다. 
    그러나 그들은 밖으로 나갈 필요성이 있거나 가난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봐야 할 때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는 다른 수녀들을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돕고 사랑하기 위해 온 천사처럼 보았다.
    
    1877년 두 번째 십자가의 수녀회 공동체가 세비야 주(洲)의 우트레라(Utrera)에 설립되었고, 
    다음해에 야야몬테(Ayamonte)에도 하나 더 설립되었다. 하지만 그 해에 토레스 신부가 선종하면서 
    호세 마리아 알바레스(Jose Maira Alvarez) 신부가 수녀회의 두 번째 영적 지도신부로 임명되었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가 살아있는 동안 다른 23개의 수녀회 공동체가 설립되었고, 
    수녀들은 애덕과 가난과 겸손의 모범으로 모든 사람들 돌보고 감화시켜 나갔다. 
    사실 십자가의 안젤라 수녀는 모든 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 알려졌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는 1932년 3월 2일 세비야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982년 11월 5일 세비야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3년 5월 4일 마드리드의 콜론(Colon) 광장에서 
    100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른 네 명의 복자들과 함께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녀는 안젤라(앙헬라) 데 라 크루스(Angela de la Cruz) 또는 
    마리아 데 로스 안젤레스 게레로 곤살레스(Maria de los Angeles Guerrero Gonzzlez)로도 불린다. 
    
     
    
    십자가의 성녀 안젤라(St. Angela of the Cross, 3월 2일)
    1846~1932년, 스페인 출생 및 사망, 십자가의 수녀회 설립.
    
    성녀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태어났습니다. 성녀의 부모는 삼위일체 수도회에서 일하며 자녀들을 길렀는데, 
    아버지는 조리사였고, 어머니는 세탁실 직원이었습니다. 살림은 가난했지만 신앙심만큼은 풍족한 가정이었습니다. 
    
    성녀 부모는 특히 성모 신심이 깊었는데, 성모성월이면 자녀들과 함께 성모상 앞에서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덕분에 성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기도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성녀에게 기도는 일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성녀는 가정 형편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대신 신발가게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다행히도 신발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영성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며 
    나눔 시간을 갖곤 했습니다. 성녀는 신발 가게에서 일하며 성소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수도회 문을 두드리기도 했지만, 몸이 너무 허약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한 번은 수도회에 입회했지만, 
    건강이 너무 나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성녀는 실망하지 않고 영적 스승으로 모시는 신부님의 권유에 따라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돌보는 
    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성녀의 이러한 삶을 보고 그를 따르며 성녀처럼 살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십자가의 수녀회라는 이름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며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 데 앞장섰습니다. 
    가난하고 아픈 이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성녀를 사람들은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성녀는 이렇게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가 돼 줬습니다. 
    
    성녀와 뜻을 같이하려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십자가의 수녀회 활동도 점차 활발해졌습니다. 
    성녀가 살아 있는 동안 23개의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2년 스페인 사목 방문 때 성녀의 시성식을 주례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1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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