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1월 4일) 성녀 엘리사벳 앤 시튼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1:27 ㆍ조회:620 ㆍ추천:0
오늘의 聖人(1월 4일) 성녀 엘리사벳 앤 시튼
     
    


    성녀 엘리사벳 앤 시튼(Elizabeth Ann Seton) 축일 1월 4일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미국(USA) 활동연도 1774-1821년


    같은이름- 낸시, 니나, 씨튼, 안나, 애나, 애니, 엘리자베스, 엘리자벳

    성녀 엘리사벳(Elisabeth)은 미국 뉴욕(New York)에서 성공회 신자이자 의사인 아버지
    리처드 베일리(Richard Bayley)와 어머니 캐서린(Catherine)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나
    1794년 1월 25일 부유한 상인의 아들인 윌리엄 매기 시튼(William Magee Seton)과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낳았다.
    그러나 1803년 남편이 폐결핵으로 사망한 후 홀로 되었는데,
    그 후부터 가톨릭 신앙생활에 눈을 뜨고 1805년에 가톨릭 교회로 개종하였다.

    볼티모어(Baltimore) 교구 캐롤(John Carroll) 대주교의 초청을 받아 자녀들과 함께 뉴욕을 떠나
    볼티모어로 간 엘리사벳은 탁월한 지성과 하느님의 은사로 1809년에 미국 최초의 가톨릭 교구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25일 볼티모어 시의 성 메리 신학교 강당에서 청빈, 정결, 순명 서원을 하면서
    미국 최초의 현지인 수도회인 사랑의 시튼 수녀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6월에는 메릴랜드(Maryland)의 에미츠버그(Emmitsburg)에 수녀원과 학교를 신축하여
    사도적 활동 수녀회로서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녀는 1821년 1월 4일 에미츠버그 수녀원에서 선종하였다. 시튼 원장은 1963년 3월 17일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미국 태생으로는 첫 번째로 시복되었으며,
    1975년 9월 14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의 의해 최초의 미국 출신 성녀로 시성되었다.

    "성녀 엘리사벳 씨튼 명상록" 에서 오, 성모 마리아의 덕은 복되신 삼위일체의 끊임없는 기쁨입니다. 그분만이 모든 하늘이 드리는 영광보다 더 많은 영광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오, 마리아의 순수함! 마리아의 겸허와 인내와 사랑. 가장 낮은 자리에서 멀리서나마 그 분을 닮아가리라.


    사랑의 씨튼 수녀회(수도 영성)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도다 우리 시대는 아픔과 고통과 수고를 멀리하고 안락과 즐거움과 풍요를 위해 사는 사람들로 넘칩니다. 사랑의 씨튼 수녀회를 창설한 엘리사벳 앤 씨튼은 미국 최초의 성녀로서, 그분의 삶은 현실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잣대를 돌리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1809년 3월 25일 메릴랜드주 에미츠버그에서 미국 최초의 방인 수녀회로 탄생한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이백 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엘리사벳 앤 씨튼 성녀를 비롯해 빈첸시오 성인과 루이즈 드 마리약 성녀의 정신을 수도회 정신으로 채택하며 전 세계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뜻을 찾고 행함 성공회의 열렬한 신자였던 엘리사벳은 성체성사에 대한 사랑과 믿음 때문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늘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엘리사벳 성녀는 하느님의 뜻에 언제나 복종하였고 어떤 희생이 요구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신은 그것이 성부의 뜻을 따르려는 것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생활의 첫째가는 목표도 하느님의뜻을 행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고, 셋째는 그분의 뜻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듯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행함을 실천하고 권고했습니다. 사랑의 씨튼 수녀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은 곧 사랑하는 삶을 뜻합니다. 사랑의 수녀들은 모든 관계에서 이 사랑을 실천하고 친교를 나누며 살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깊은 신뢰와 영원성 엘리사벳은 하느님을 깊이 신뢰하였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으며, 우리 삶에 주어지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선하신 배려와 축복이 무엇인지 발견하였습니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무너져 구름으로 가득 차 있고 내가 당신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고 당신의 빛을 볼 수 없을 때 그때까지도 나는 당신에게 신뢰를 두겠습니다.”라는 말씀처럼, 엘리사벳이 죽음과 이별의 아픔, 질병, 집안의 경제적 파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섭리의 때를 기다리며 자신의 의지를 하느님 뜻에 온전히 일치시키려는 원의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녀가 영원성을 지닌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인간적인 욕망과 나약함을 억지로 제거하려 하지 않고 거룩한 지혜의 빛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육화적 영성 엘리사벳은 사랑하는 딸들에게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순간순간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모든 것이 잘 되리라 믿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은총을 받으려면 항상 앞으로 나가십시오. 이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하느님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현존하신다는 것과 하느님의 섭리를 그분의 딸들인 우리도 깊이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엘리사벳 씨튼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육화적 영성으로 사셨습니다. 육화적 삶의 구체적 실현은 개방성과 융통성이 있어 가능합니다. “겸허, 소박, 사랑 그리고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지향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의 현존은, 사랑의 수녀들이 딛고 있는 현실에 늘 깨어 살게 합니다. 하느님 말씀은 삶의 창문 엘리사벳 씨튼은 삶과 영성을, 모든 위로와 기쁨의 원천을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엘리사벳의 일생의 동반자였고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는 길이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신자였을 때나 가톨릭으로 개종한 다음에도 엘리사벳은 성경에서 모든 위로와 기쁨을 찾았고, 엘리사벳이 쓴 편지와 일기와 교훈 등 모든 것에 성경 말씀이 가득하며, 감사와 기쁨과 신뢰와 슬픔 그리고 간청을 드러낼 때도 성경 말씀을 자연스럽게 인용했습니다. 성경은 엘리사벳에게 창문과 같아서 엘리사벳은 성경을 통해 세상을 보고, 모든 사건을 해석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통한 영적 성화, 가정의 성화 성녀 엘리사벳 씨튼의 삶과 정신은 무너져가는 이 시대 가정에 진정성을 회복하며 가정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는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 윌리엄 메기 씨튼과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낳고 세속의 행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어린 자녀들과 시동생들을 돌보고 가르치고, 이웃에 봉사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데서 행복을 느꼈습니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가족과 친구들의 냉대와 가난 그리고 사회적 고립을 참으며, 다섯 아이와 자신을 따르는 시동생들의 생계와 교육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또 남편과 딸들 ∙ 혈육만큼 소중한 시누이들은 폐결핵으로 잃고, 두 아들 때문에 오랜 세월을 눈물과 기도로 보내고, 수도회를 창설하는 과정에서 알력과 갈등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엘리사벳은 이런 삶의 고비에서 기적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특유의 쾌활하고 낙관적인 성품으로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섭리와 자비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며 평범한 일상을 거룩한 태도로 살았습니다.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김 1808년, 엘리사벳은 존 캐롤 대주교의 권유로 미국 내의 유일한 교구였던 볼티모어 교구에 와서 당시 종교 차별과 가난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소녀들을 위해 미국 최초로 부유층과 빈곤층의 자녀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기숙학교인 가톨릭 교구학교를 엽니다. 이 일을 시발점으로 미국에서는 소외받는 이들, 여성들과 어린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봉사가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랑의 씨튼 수녀들도, 여성의 생명력과 어머니의 마음으로 갈등과 분열로 상처 난 가정과 지구를 살리고, 전쟁과 미움으로 얼룩진 세상을 치유하는 도구가 되도록,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현실에서 부르심에 귀 기울입니다. 그리스도의 육화적 삶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역동적 힘인 개방성과 융통성을 가지고 하느님의 섭리를 믿으며, 시대의 징표를 알아듣고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응답하는 예언자적 소명을 따라 사는 것이 사랑의 씨튼 수녀들의 삶입니다. 우리는 성녀 엘리사벳을 닮고자 되뇝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도다.” (경향잡지, 200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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