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1월 1일) 성녀 즈디슬라바 데 렘베르크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1:11 ㆍ조회:702 ㆍ추천:0
오늘의 聖人(1월 1일) 성녀 즈디슬라바 데 렘베르크
     
    
    
    즈디슬라바 데 렘베르크(Zdislava de Lemberk) 축일 1월 1일  
    부인, 3회원 ,활동연도 1220-1252년  
    
     같은이름- 베르카, 베르키아나, 제디슬라바, 지디슬라바, 지슬라바, 츠디슬라바, 치디슬라바 
    
    보헤미아(Bohemia)의 모라비아(Moravia) 지역 크리자노프(Krizanov) 교구 출신인 성녀 즈디슬라바 데 렘베르크는 
    불과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인근의 숲 속으로 들어가서 홀로 기도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돌아오곤 하였으나 그녀의 고집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부모는 일찍이 그녀를 어느 귀족과 결혼시켰고, 그녀는 네 자녀를 두었으나 
    남편은 어린 아내를 항상 잔인하게 다루었다. 그녀는 항상 남편을 이해하려고 애썼고 
    또 가난한 사람들의 대모로서 자선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타타르족이 침입하여 그들의 머무는 가벨(Gabel) 성이 함락되었을 때 남편이 어느 걸인을 
    침대에 재운 적이 있었는데, 이 걸인이 곧 그리스도의 발현이었다. 이에 크게 감명을 받은 남편은 그 길로 
    아내를 도미니코 수도회의 제3회 회원이 되게 하였다. 그녀는 자주 탈혼에 빠졌고 매일같이 성체를 모셨으며, 
    도미니코 수도회의 초대 3회원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즈디슬라바 베르카(Zdislava Berka) 또는 
    제디슬라바 베르키아나(Zedislava Berkiana)로도 불리는 그녀는 1252년 1월 1일 보헤미아의 
    야블론(Jablone)에서 선종하였다. 1907년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그녀에 대한 공경이 허용된 후, 
    1995년 5월 21일 체코 올로모우츠(Olomouc)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녀 즈디슬라바 데 렘베르크 수도회 제3회 회원이면서 평신도로서 모범적인 삶을 산 여성
    
    즈디슬라바 데 렘베르크(Zdislava de Lemberk, 1220-1252) 혹은 즈디슬라바 베르카(Zdislava Berka)는 
    보헤미아 지역에 진출한 도미니코 수도회의 제3회 회원으로 올바르고 참된 정신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녀는 모라비아(Moravia) 지역의 크리자노프(Krizanov)에서 태어났다. 현재 체코 공화국(Czech Republic)의 
    보헤미아에 위치한 레토메리치(Letomerice)는 8백 년 전 즈디슬라바가 태어난 지역에 해당한다.
    
    즈디슬라바는 귀족 가문 태생으로 불과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홀로 숲속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고 
    깊은 묵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혼 적령기에 이르자 가족들의 강권으로 자기 집안과 일가친척인 
    지체 높은 귀족과 결혼하였다. 결혼한 다음 즈디슬라바는 가벨(Gabel)에 있는 큰 성(城)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사는 가벨 성을 주변 지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은 큰 고통과 시련이 닥쳐올 때면 그녀가 사는 성으로 피난을 가곤 하였다. 
    곤경에 빠진 사람들은 즈디슬라바가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고 자신들의 고통을 감싸 안아주리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13세기 몽골 제국이 유럽을 침공하자 모라비아 지역은 엄청난 혼란을 겪었고, 수많은 전쟁 난민이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가벨 성으로 물밀 듯이 밀려왔다. 즈디슬라바는 자기를 믿고 찾아온 난민들을 
    모두 따뜻하게 맞아 주었고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 주었다.
    
    즈디슬라바의 남편은 아내의 선량함과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에 감동하여 
    아내가 도미니코 수도회의 제3회 회원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서 
    아주 명예로운 일이었다. 도미니코 수도회 제3회 회원이 된 즈디슬라바는 제3회 회원으로 지켜야 할 
    삶의 방식과 규칙 등을 철저히 준수하였다. 이와 같이 수도회의 생활방식을 성실히 따르던 즈디슬라바는 
    기도에 점점 깊이 몰입하였고, 특별하고 신비한 은총을 많이 받았으며, 불가사의한 경험을 겪기 시작하였다. 
    즈디슬라바는 작은 규모로 성 라우렌시오 수도원을 세우고 이 수도원이 지역 주민들에게 참된 신앙의 원천이 되게 하였다.
    
    즈디슬라바는 보헤미아의 야블론(Jablone)에서 선종하였다. 1907년 교황 성 비오 10세는 즈디슬라바를 복자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1995년 5월 20-22일까지 3일 동안 체코 공화국과 폴란드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1일에 체코 올로모츠(Olomouc)에서 즈디슬라바를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교황은 시성식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성녀 즈디슬라바 드 렘베르크는 가정생활과 자선활동에서 위대한 모범을 보인 분으로 성모님께서 
    13세기 보헤미아 지방에서 사셨다고 가정하였을 때, ‘과연 어떻게 사셨을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즈디슬라바의 삶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즈디슬라바는 평생 동안 성모님의 사랑과 부드러운 마음, 
    이웃에 대한 배려 특히, 병든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자신의 삶 속에서 구현하였습니다.” 
    -교회와 역사, 2011년 12월호, 번역 송영웅 바오로(봉명학원 재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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