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1월 28일)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5:24 ㆍ조회:295 ㆍ추천:0
오늘의 聖人(1월 28일)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Joseph Freinademetz) 축일 1월 28일  
    신분 신부, 선교사, 활동지역 중국(China) 활동연도 1852-1908년     
    
     같은이름-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프라이나데메쯔, 호세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Josephus Freinademetz, 福若瑟)는 1852년 4월 15일 오스트리아와 접한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의 다섯 가구만 사는 작은 마을인 오이에스(Oies)에서 조반마티아(Giovanmattia)와 
    안나 마리아 프라이나데메츠(Anna Maria Freinademetz)의 12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남부 티롤(South Tyrol)로 알려진 이 지방은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Austro-Hungarian) 제국의 영토였다. 
    그는 태어난 날 세례성사를 받고 가족으로부터 단순하지만 독실한 신앙을 물려받았다.
    
    그는 브레사노네(Bressanone, 브릭센 Brixen)의 교구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해외 선교사로서 일생을 
    살아갈 것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1875년 7월 25일 사제품을 받고 고향 인근의 성 마르티누스(Martinus) 공동체로 발령을 
    받은 그는 곧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하지만 선교사로서 살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서품 받은 지 2년째 되던 해에 말씀의 선교 수도회(Societas Verbi Divini, 신언회)의 모태가 된
     ‘성 미카엘 선교 신학교’를 설립한 성 아놀드 얀센(Arnold Jansen, 1월 15일) 신부를 만나 도움을 받았다.
    
    그는 교구장 주교의 허락을 받고 1878년 8월 네덜란드의 슈타일(Steyl)에 있는 성 미카엘 선교 신학교에 들어갔다. 
    1879년 3월 2일 그는 선교사 십자가를 받고 말씀의 선교 수도회 소속 요한 밥티스타 안제르(Joannes Baptista Anzer) 신부와 
    함께 중국을 향해 출발했다. 5주간의 항해 후 그들은 홍콩(Hong Kong)에 도착해서 2년간 머물며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1881년 그들은 1,200만 명의 인구에 겨우 158명의 신자들이 살고 있는 산둥성(山東省) 남부의 새로운 선교지로 
    선교 여정을 떠났다. 이는 오랜 시간을 걸리는 힘겨운 여정으로 강도들의 습격을 받으면서도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형성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나의 공동체가 겨우 형성되었을 때 주교의 훈령이 도착해 그들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다.
    
     
    
    오래지 않아 그는 특별히 첫 복음화를 위한 교리교사와 같은 헌신적인 평신도들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는 교리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온 힘을 쏟으며 중국인을 위한 교리교육 책자를 준비하였다. 
    동시에 주교가 된 안제르와 함께 중국인 사제와 다른 선교사들의 영성적 형성과 지속적인 교육을 준비하는데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그의 전 생애는 중국인들 안에서 중국인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그래서 그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중국과 중국인을 사랑합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죽기를 원하며 그들 가운데 묻혀 안식을 누리고 싶습니다.”
    
    1898년 요셉 프라이나데메츠 신부는 후두염을 앓았고, 고된 작업과 다른 많은 힘든 일의 결과로 결핵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주교와 다른 사제들의 권유에 의해 건강을 회복할 희망을 안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그곳에서 얼마간의 건강을 회복한 후 그는 중국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완쾌된 것은 아니었다. 
    1907년 안제르 주교가 유럽에 다녀오기 위해 중국을 떠났을 때 그는 교구의 행정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 기간 중에 심각한 장티푸스 전염병이 발발했는데, 착한 목자인 그는 자신이 감염될 때까지 많은 공동체를 
    방문하며 지칠 줄 모르는 도움을 제공했다. 결국 그는 주교좌가 있는 산둥의 타이키아(Taikia)로 돌아와서 
    1908년 1월 28일 눈을 감았다. 그는 선종한 후 십자가의 길 제12처에 묻혔고, 
    그의 무덤은 곧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순례지가 되었다.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 신부는 어떻게 하면 중국 문화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배웠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 사랑의 복음 메시지를 선포하는데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그리고 중국인 신앙 공동체들을 양성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화하였다. 
    그는 활기에 넘친 공동체들이 스스로를 개방해 지역 주민들과 연대하도록 하였고, 
    중국인 신자들 스스로 교리교사 · 수도자 · 사제로서 자기 민족을 위한 선교사가 되도록 고무하였다. 
    그의 생애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는 사랑입니다.”라는 그의 모토로 표현될 수 있다. 
    그는 1975년 10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3년 10월 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아놀드 얀센과 아프리카의 사도인 다니엘 콤보니(Daniel Comboni, 10월 10일) 주교와 
    함께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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