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3일) 성 리카르도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20:34 ㆍ조회:280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3일) 성 리카르도  
    
    
    
    성 리카르도(Richard) 축일 4월 3일  
    신분 주교 , 활동지역 치체스터(Chichester) 활동연도 1197-1253년 
    
     같은이름- 리까르도, 리까르두스, 리차드, 리처드, 리카르두스  
    
     
    
    잉글랜드(England)의 위치(Wych)에서 태어난 성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는 
    옥스퍼드를 비롯하여 파리(Paris)와 볼로냐(Bologna)에서 수학했고, 1235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사무국장이 되었으나, 
    당시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인 애빙던(Abingdon)의 성 에드문두스 리치(Edmundus Rich, 11월 16일)를 만나 
    그를 돕기 위해 즉시 사무국장의 직책을 사임하였다. 
    
    그 후 1240년 성 에드문두스 대주교가 프랑스의 퐁티니로 망명했을 때 그를 수행한 성 리카르두스는 
    에드문두스 성인이 사망한 후 오를레앙(Orleans)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은거하며 신학을 연구하고 
    서품을 받은 후 영국으로 돌아왔다. 1244년 성 리카르두스는 치체스터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그의 업적은 교구의 완전한 개혁으로 교회 내의 친족 등용과 성직매매를 적극 반대하고 금지시킨 것이다. 
    
    
    
    성 리카르도(St. Richard of Chichester, 4월 3일)
    영국에 개혁의 바람을…친족정치와 교회 내 성직매매 등 엄벌
    1197~1253. 잉글랜드 위치(Wyche, 현 드로이트위치) 출생. 잉글랜드 치체스터교구장.
     
    성 리카르도는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부모를 여의어 고아로 자랐다. 
    성인은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으나 재산에 관심이 없어 남동생에게 모두 물려줬다.
     
    결혼도 거부한 채 공부에만 전념한 성인은 옥스포드에서 공부를 마친 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와 볼로냐에서 공부했다. 교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35년 다시 옥스포드로 돌아왔다.
     
    성인은 옥스포드의 한 대학에서 총장을 역임했고 당시 캔터베리 대교구장이던 에드문드 리치 대주교의 교회법 
    자문을 맡았다. 에드문드 리치 대주교는 성인이 옥스포드에서 공부할 당시 알게 됐는데 이후 대주교를 수행했다.
     
    에드문드 리치 대주교가 프랑스로 망명을 가자 성인도 함께 따라갔다. 에드문드 리치 대주교가 사망한 뒤 
    그는 프랑스에 남아 오를레앙 지역 도미니코수도회 수도원에서 수사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수도원에서 생활하면서 1243년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1년 뒤 치체스터 교구장으로 임명돼 영국으로 돌아온다. 당시 영국왕 헨리 3세는 성인의 개혁적 성향과 
    강직함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교황청에 교구장 임명을 무효화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치체스터 교구장이 된 성인은 교회 내 친족정치와 성직매매를 엄벌하며 개혁을 감행했다. 
    성직자들에게 도덕성과 윤리를 강조하며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에게 다가가도록 이끌었다.
    성인은 1262년 교황 우르바노 6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으며 성인의 유해는 현재 영국 치체스터 대성당에 안치돼 있다.
    [평화신문, 제1012호(2009년 3월 29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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