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2일)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20:32 ㆍ조회:424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2일)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Francis Coll Guitart) 축일 4월 2일  
    신분 신부, 설립자, 활동연도 1812-1875년    
    
     같은이름-귀타르트, 방지거,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에스파냐 북동부 피레네 산맥과 면한 카탈루냐(Cataluna)의 곰브레니(Gombreny)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Franciscus Coll Guitart, 또는 프란체스코 콜 기타르트)는 비크(Vich)에 있는 
    교구 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1830년 헤로나(Gerona)의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835년 교회에 반대하던 정부에 의해 헤로나의 신학원이 폐쇄되고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날부터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는 죽는 날까지 수도 공동체의 어떠한 지원도 없이 
    도미니코 수도회의 성소를 영웅적인 신앙으로 지켜왔다.
    
    결국 그는 1836년 비크의 교구 신학교로 돌아와 사제품을 받고 몇 년 동안 본당사목을 한 후 
    그의 친구의 성 안토니우스 마리아 클라렛(Antonius Maria Claret, 10월 24일)과 함께 순회설교자로 나섰다. 
    그는 1856년 그가 설교하는 지역의 가난한 이들의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해 
    예수 탄생 예고의 도미니코 수녀회(La Annunciata)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여개의 수녀원으로 성장했고 오늘날 유럽과 아메리카에 
    140개 이상의 수녀원을 두고 있다. 1869년 설교 도중 눈이 멀게 되고 건강도 이전 같지는 않았지만 
    그는 끝까지 은퇴하지 않았다. 1875년 4월 2일 선종한 그는 자신이 설립한 수녀회의 모원에 안장되었다. 
    그는 1979년 4월 2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09년 10월 11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St. Francisco Coll Guitart, 4월 2일)
    1812~1875년, 스페인 출생 및 선종, 도미니코수도회 신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 도미니코 수녀회 설립.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사제들에게 강론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강론 준비를 위해 연구와 기도와 묵상에 오랜 시간을 바쳐야 한다”면서 “강론은 추상적 진리나 
    차가운 삼단논법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성경 말씀이 선물임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2009년 시성된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 신부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한 강론의 모범을 보이신 분입니다. 
    성인은 신자들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귀한 자녀임을
     일깨워주는 강론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성인은 스페인 북동부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이곳저곳을 다니며 하느님 말씀을 전해 
    ‘현대의 사도’로 불렸습니다. 성인은 강론 준비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고, 
    자료를 찾고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고 합니다. 
    
    성인은 또 병원에 입원한 환자, 감옥에서 지내는 재소자 등 하느님 말씀을 자주 접할 수 없는 
    이들을 자주 찾았습니다. 역병이 창궐했을 땐 더 자주 병원을 드나들며 환자들을 위로했습니다. 
    성인이 있는 곳엔 언제나 미사와 말씀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성인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 도미니코 수녀회를 설립해 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칠 
    수녀님들을 양성했습니다. 이 수녀회는 현재 세계 각국에 퍼져 있습니다. 
    
    성인은 1869년 강론하는 도중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건강 또한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됐습니다. 
    주변에선 모두 쉬라고 권유했지만, 성인은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하며 
    신자들을 만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79년 성인을 복자품에 올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인은 신앙과 희망의 증거자이자 사랑과 평화의 전도사”라며 성인의 삶을 칭송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29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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