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6:28 ㆍ조회:301 ㆍ추천:0
오늘의 聖人(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성 요한 보스코(John Bosco) 축일 1월 31일  
    신분 신부, 증거자, 설립자, 활동연도 1815-1888년    
    
     같은이름- 돈 보스꼬, 돈 보스코, 돈보스꼬, 돈보스코, 보스꼬, 보스코,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는 1815년 8월16일 이탈리아 사르데냐(Sardegna) 왕국 피에몬테(Piemonte)의 
    베키(Becchi)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 프란치스코(Francisco Bosco)와 마르게리타(Margherita Occhiena)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두 살도 안 되었을 때 아버지가 급성 폐렴으로 사망하여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깊은 신앙과 근면한 노동 정신 그리고 순종의 덕을 배웠다. 
    
    가난 때문에 정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성 요한 보스코는 9세 때 농한기를 이용하여 카프릴리오 초등학교에서 
    읽기와 쓰기만을 배웠다. 15세 되던 해인 1830년에 카스텔누오보(Castelnuovo) 읍내의 한 초등학교에서 
    단기 과정을 이수한 후, 키에리(Chieri) 시의 인문학교에 진학하여 5년 과정을 마치고 1835년에 키에리 신학교에 
    입학했으며, 1841년 6월 5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 서품 후 성 요한 보스코는 그의 은인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성 요셉 카파소(Josephus Cafasso, 6월 23일) 신부의 도움으로 토리노(Torino)에 있는 사제 연수원에서 
    신학 연구와 현대 사목에 관한 연구 기회를 얻게 되었다.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사르데냐 왕국의 수도로 정치와 산업화의 중심지인 토리노에 체류하는 동안, 
    토리노의 뒷골목을 방황하는 소년들, 전쟁고아들, 교도소에서 만난 12-20세의 수많은 청소년들, 
    공장에서 비인간화되어 가는 소년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1844년 연수원을 졸업한 후 바롤라(Barola) 후작 부인이 경영하는 '소녀들 고아원'의 지도 신부로 부임하였으나 
    소년들의 사목에 온전히 헌신하기 위해 고아원에서 독립한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100여 명이 넘는 소년들과 함께 
    거처도 없이 이동하다가 1846년 4월 토리노 시의 서북쪽 도라 리파리아 강변의 발독코(Valdocco)에 정착하였다.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한편으로는 주일학교를 시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견습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1851-1853년에는 고아들과 가출 소년들을 위해 성 요셉 카파소 신부와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발독코에 
    기숙사를 세웠으며, 제본소나 인쇄소 등의 직업학교와 기술학교도 시작하였다. 일반 교육에도 관심을 가져 
    기숙사의 소년들을 외부 학교에 보냈으며, 1856년에는 불어나는 소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기숙사 구내에 
    학교를 세우는 등 그의 청소년 교육 사업은 점점 커져갔다.
    
    그는 엄격한 규율이나 훈련을 피하고 사랑으로 대하였으며, 각자의 성장과 발전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여 
    대응하였고, 각자의 개성과 신앙을 격려하여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길러냈다. 이 사업이 날로 확대되자 
    그는 소년들에 대한 교육과 사랑을 설교하러 다니는 한편 유명한 “예방 교육법”이란 저서를 저술하였다. 
    그는 사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교황 비오 9세(Pius IX)의 권고에 따라 1859년 18명의 제자들에게 
    수도 서원을 하게 하였고, 그들은 가난한 청소년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서약하였다. 
    수도 서원으로 기초를 다진 성 프란치스코의 살레시오 수도회는 1869년 3월 1일 정식으로 교황청으로부터 
    수도회 인가를 받았으며, 1871년 4월 13일에는 회헌 인가를 받았다. 이듬해에는 소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살레시오 수녀회를 창립하였고, 1876년에는 살레시오 협력자회를 설립하였다.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1888년 1월 31일 침대 주위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회원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 주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7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리고 1929년 6월 2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4년 4월 1일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그는 청소년 교육의 선구자이며, 편집자와 교정자의 수호성인이다. 
    
    
    
    성 요한 보스꼬 사제의 편지에서(Epistolario, Torino, 1959, 4,201-203)
    
    나는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생도들의 참된 행복을 찾고 그들이 생활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도록 인도해 주고 싶다면,
    우리는 이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부모를 대리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언제나 그들을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노력하고 또 사제 직분을 이행해 왔습니다.
    비단 나만이 아니고 살레시오회의 회원 전체가 그렇게 했습니다.
    자녀들이여, 
    나는 나의 긴 생활을 통해서 이 위대한 진리에 대해 얼마나 자주 확신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참는 것보다 화를 내는 것은 더 쉽고 젊은이들을 위협하는 것은 설득시키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겠습니다.즉, 참아 내지 못하고 오만한 성격을 지닌 우리에게 있어서, 
    반항하는 생도들을 참아 주면서엄중하게 그리고 온유하게 그들의 잘못을 고쳐 주는 것보다 
    벌을 주는 것이 더 용이한 일이라는 점입니다.
    
    성 바울로가 초심자들에 대해 지녔던 그 사랑을 나는 여러분에게 천거합니다.
    바올로 사도는 그들이 잘 순종하지 않고 자신이 베푸는 사랑에 대해 무관심한 것을 보았을 때
    그 사랑은 바울로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고 그들에게 권고하게끔 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주체 못하는 분노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할 근거를 어느 누구에게도 주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벌을 줄때 우리가 권위를 주장하거나 또는 분노를 폭발시키려고 행동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필요하게 되는 그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기란 힘든 일입니다.
    
    우리 권하에 있는 이들을 우리 자녀로써 바라보도록 합시다.
    명령하러 오시지 않고 순종하러 오신 예수님처럼 그들을 섬기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지배한다는 그런 인상 마저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더 잘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지 맙시다.
    
    예수님이 사도들을 대하신 방법도 바로 이것입니다.
    사도들은 무지하고 예의를 모르고 불충실한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은 그들을 참아 주셨습니다.
    주님은 죄인들도 자비와 애정 어린 지극한 친밀성으로 대하셨습니다.
    그것을 본어떤 이들에겐 놀라움이 되었고 또 어떤 이들에겐 걸림돌이 되었지만 
    한편 다른 이들은 그분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보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되라고 권고해 주셨습니다.
    
    생도들이 진정 우리의 자녀라면 그들의 잘못을 고쳐 줄때, 우리는 온갖 분노를 재거해 버리거나 
    분노를 완전히 제어한 것으로 보일 정도로 가라앉혀야 합니다. 우리는 분노로 마음의 평화를 잃거나 
    멸시의 눈초리를 보여 주거나 또는 마음 상하는 말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오히려 잘못을 고쳐 주고 
    다 잘되게 해주는 참된 부무들처럼 지금은 자비를 베풀고 미래에는 희망을 내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중대한 문제들이 있는 경우에는절조 없이 말을 뇌까리는 것보다는 겸손과 항구심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절조 없이 말을 뇌까릴 때 그말을 듣는 사람에게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겐 유익한 것을 하나도 주지 못합니다.(가톨릭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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