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1월 22일) 성 빈첸시오 팔로티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3:49 ㆍ조회:306 ㆍ추천:0
오늘의 聖人(1월 22일) 성 빈첸시오 팔로티
    
     
    
    성 빈첸시오 팔로티(Vincent Pallotti) 축일 1월 22일  
    신분 신부,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795-1850년    
    
     같은이름-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성 빈첸시오 팔로티(Vincentius Pallotti)는 1795년 4월 21일 로마(Rome)에서 식료품 장사를 하던 부유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스승이었던 돈 페리(Don Ferri)는 그를 “작은 성인이지만 머리는 조금 둔했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학업 성취 능력은 향상되었고 23세에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는 로마의 사피엔자(Sapienza)에서 조교수가 되어 신학을 가르쳤다.
    
    성 가스파르 델 부팔로(Gaspar del Bufalo, 1월 2일)와의 우정에서 고무된 성 빈첸시오는 자신의 직위를 포기하고 
    여러 본당에서 사목활동에 전념하였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사도적 역할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예견하듯이, 1835년 성 빈첸시오는 변화와 정의에 헌신하고자 하는 성직자, 수도자와 평신도들을 모아 
    가난한 소년들을 위한 야간학교와 직업학교를 세우고 선진 농업기술의 전수를 위한 학원을 세웠다. 
    학교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제화, 제단 기술과 농업 같은 시장성이 있는 기술을 가르쳤고 그들의 작업에 자부심을 주입시켰다. 
    그는 수도생활의 기도와 침묵에서만 성스러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을 발견한 사람이 
    채워주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에서 일했다. 
    이러한 정책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1월 31일)의 정책과도 비슷했다.
    
    초기의 이 그룹에서 팔라티노회(가톨릭 사도회)가 생겼으며 성 빈첸시오의 일생 동안 12명의 회원만 있었지만 
    그 후로 성장하였으며 1843년에는 팔라티노 수녀회가 설립되었다. 그들은 이탈리아,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지에 퍼져 창립자와 같은 이민자들을 돌보았으며 동방 정교회 그리스도교인들과의 종교 간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데 전문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젊은 교수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당신은 트라피스트 회원과 은수자들의 엄격함과 침묵에서 잘라져 나온 부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거룩해 지십시오. 사회관계에서, 당신의 일터에서, 여가 생활 중에, 당신의 가르치는 직무에서, 
    출판사와의 만남과 죄인들과의 만남에서 거룩해 지십시오. 성스러움이란 단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 
    언제 어디에나 있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 빈첸시오의 사도적 활동은 자신의 엄격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1837년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영적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해 극도의 노력을 했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제는 누구나 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환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파로 분장하기도 했다. 1844년 성 빈첸시오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신부를 런던(London)에 사는 이탈리아인들을 사목하도록 파견하였다. 그 후로 그의 수도회는 세계 각지로 뻗어나갔다. 
    로마의 시민들은 성 빈첸시오 신부를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의 19세기 판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성 빈첸시오는 자신의 옷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반라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다가 1850년 1월 22일 55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 중인 1963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가톨릭 액션(Catholic Action)의 선구자'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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