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5일) 성녀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21:06 ㆍ조회:309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5일) 성녀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  
    
    
    
    성녀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Mary Crescentia Hoss) 축일 4월 5일  
    신분 동정녀, 활동지역 카우프보이렌(Kaufbeuren) 활동연도 1682-1744년    
    
     같은이름- 메리, 미리암, 크레센씨아, 크레센티아, 크레셴시아, 크레스켄티아, 크레쎈씨아, 헤스, 헤쓰, 호스  
    
    
    
    성녀 마리아 크레스켄티아 회스(Maria Crescentia Hoss,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의 카우프보이렌에서 가난한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양친의 신앙생활이 매우 열심하였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단순함의 표양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 자녀들은 모두 세례를 받고 자주 성당에 가서 기도하곤 하였다. 
    성녀 마리아 크레스켄티아 회스는 집주위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녀회 성당으로 자주 성체조배를 하러 다녔는데,
     어느 날 그녀는 십자가로부터 신비스런 목소리를 들었다. “이곳이 네가 거처할 집이니라.”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께 간청하여 수녀원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집안이 너무 어려우니 21세까지만 
    기다리라는 말씀을 듣고 열심히 가사를 도왔다. 
    
    드디어 이 약속은 지켜졌다. 그녀의 수녀원 생활은 겸손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참금을 전혀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아주 조그마한 방이 마련되었으나 
    지참금을 지불한 새 입회자에게 넘겨주어야 했고 자신은 그녀의 방 마루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 모든 수모를 아주 겸손하게 받아들였고, 그럼으로써 높은 성덕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장상이 임명되었을 때에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그녀의 높은 덕을 보고 살아있는 성녀로 높이 평가한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수련장과 원장직까지 역임하였다. 
    그녀는 수많은 환시를 보았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특히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한 신비적 체험이 많았다. 
    이 체험은 매주 금요일마다 일어났다. 그러므로 그녀의 영향은 수녀회 뿐만 아니라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참 지혜와 겸손으로부터 큰 감명을 받고 돌아갔으며, 
    교회의 지도자들도 가난한 이 수녀의 의견을 듣고자 애썼다. 
    성녀 마리아 크레스켄티아 회스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11월 25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녀 마리아 크레센티아 회스 - 프란치스코 수녀회 개혁자
    
    마리아 크레센티아 회스(Maria Crescentia Hoss, 1682-1744)는 아우크스부르크(Augsbrug) 교구에 속한 
    바이에른[Bavaria] 주 카우프보이렌(Kaufbeuren)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마티아스 회스(Matthias Hoss)와 
    어머니 루치아 호에르만(Lucia Hoermann) 사이에서 낳은 팔남매 중 일곱 번째 아이였다. 
    1703년 그녀는 가족 문제와 지역 수도회 장상이 꺼리는 가운데 수도회에 입회하려 하였고, 
    1704년에 마이어호푸(Mayerhoff)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녀회(Franciscan Tertiaries)의 입회 허가를 받아 입회하였다. 
    
    1709년에서 1741년까지 마리아 크레센티아 수녀는 수녀원에서 문지기, 수련 수녀를 가르치는 교사, 수도회 장상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는데, 각각의 직책을 타고난 재능과 무한한 자비심으로 훌륭하게 수행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을 살펴보면, 1726년부터 1741년까지 수련 수녀를 가르치는 교사로 봉직하였을 때, 
    교사로서의 탁월한 능력이 드러났다. 1741년에 마리아 크레센티아 수녀는 고사(固辭)를 거듭하였음에도 
    수도회 장상으로 선출되었다. 그녀는 수도회 장상으로 봉직하는 동안 수녀원에 다양한 개혁과 쇄신을 단행하였는데 
    수녀들에게 침묵을 지킬 것과 지속적인 영적 독서, 특히 복음을 꾸준히 읽고 묵상할 것을 권장하였다. 
    
    마리아 크레센티아 수녀가 마이어호푸에서 수도회 장상으로 봉직한 기간은 3년에 불과하였지만, 수도 공동체를 
    크게 쇄신시킴으로써 두 번째 창설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녀가 마이어호푸 수녀원의 영적 쇄신을 위해 시행한 
    개혁의 중심은 거룩한 섭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매일의 삶을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것, 침묵의 소중한 가치는 
    바로 아는 것,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복되신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었다. 마리아 크레센티아 수녀가 수녀원을 성공적으로 개혁할 수 있었던 중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성소자를 받아들이는 데 그녀가 얼마나 신중을 기하였는지를 꼽을 수 있다. 
    
    마리아 크레센티아 수녀가 선종하자 수녀들은 그의 시신을 대수도원 경당에 안치하였다. 
    1900년 교황 레오 13세는 바이에른 지방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랑하고 존경하던 마리아 크레센티아 수녀를 
    복자로 선포하였고, 2001년 11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시성하였다.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말을 하였다. 
    
    “‘임금이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자.’ 이 말씀은 성녀 마리아 크레센티아 회스가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온 생애를 관통한 간절한 소망이며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녀는 봉사하는 삶을 살며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재능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 크레센티아 회스 수녀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젊었을 때부터 성가의 솔로 부분을 맡아 노래하였지만,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찬송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였습니다. 
    
    그녀는 각종 활동에서 알게 된 남자 동료들과의 교류 대신에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녀원 안에서 일생을 보냈지만, 그녀는 당시 많은 사람이 존경하던 영적 조언자였습니다. 
    
    마리아 크레센티아 회스 수녀를 보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이 그녀가 머무르는 수도원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녀를 찾아온 방문객 중에는 평신도 남녀뿐만 아니라 공주와 황후,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수도원장과 
    주교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마리아 크레센티아 회스 수녀는 영적인 산파(産婆)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조언을 구하고자 당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리가 돋아나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성녀에게도 고통은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마리아 크레센티아 회스 수녀가 살던 시대에도 어느 특정인을 집단으로 따돌리고 괴롭히는 악습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수도 공동체에서 바로 이 따돌림의 표적이 되어 적지 않은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따돌림에도 참고 견디며 결코 자신의 수도 성소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수도 공동체 안에서 오랜 세월 수모와 고통을 겪었지만, 이러한 고통은 오히려 그녀에게 인내의 덕을 
    쌓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내하며 쌓은 덕은 나중에 마리아 크레센티아 회스 수녀가 
    수도회 장상이 되었을 때, 곧바로 수녀들을 영신적으로 돌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대하였고 수녀들에게는 영신적인 어머니가 되어 주었으며, 
    따뜻하고 친절한 말을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늘 친절하였습니다. 
    성녀 크레센티아에게 그리스도의 왕국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와 같았습니다. 
    마리아 크레센티아 회스 성녀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해 한평생을 헌신하였습니다.” 
    성녀 마리아 크레센티아 회스의 축일은 4월 5일이다.(교회와 역사, 2013년 3월호, 번역 송영웅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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