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4일) 성 이시도로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21:04 ㆍ조회:264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4일) 성 이시도로  
    
    
    
    성 이시도로(Isidore) 축일 4월 4일  
    신분 주교, 교회학자,  활동지역 세비야(Sevilla) 활동연도 560?-636년    
    
     같은이름-이시도루스, 이시돌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카르타고(Carthago)에 정착하여 살다가 549년경 서고트족(Visigoths)의 
    침입으로 도시가 파괴되자 세비야로 이주한 에스파냐계 로마인 귀족 가문에서 560년경에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20년 정도 나이 차가 나는 큰형 성 레안데르(Leander, 2월 27일)와 누나 성녀 플로렌티나(Florentina, 6월 20일)는 
    카르타고에서 태어났고, 작은형 성 풀겐티우스(Fulgentius, 1월 16일)와 그는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이들 남매들은 후에 모두 성인 성녀로 시성되었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 큰형 성 레안데르에게서 양육과 교육을 받은 성 이시도루스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주로 수도원과 세비야 주교좌 학교에서 보냈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소양을 쌓으며 성숙한 영성생활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라틴어, 문학 등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갖추게 되었다. 형 레안데르가 600년경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세비야의 대주교가 된 성 이시도루스는 형의 과업을 이어받아 서고트족을 아리우스주의(Arianism)로
    부터 개종시키고 에스파냐에 가톨릭 교회를 재건하는데 전력하였다. 이를 위하여 그는 여러 차례 교회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그중 619년의 세비야 교회 회의와 633년의 제4차 톨레도(Toledo) 교회 회의가 대표적이다. 
    
    또한 그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비롯하여 의학, 법률 등을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였다. 
    그의 위대한 학문적 업적은 시세부토 왕의 요청으로 전 20권으로 구성된 백과사전 “어원학”을 저술하였다. 
    이는 이후 여러 세기 동안 교과서 및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었다. 또 역사서로 “고트족, 반달족, 
    스베니아족의 통치사”(Historia de Regibus Gothorum, Vandalorum, et Suevorum)도 유명하다. 
    또 다른 것으로 그는 모자라빅 미사경본과 성무일도서를 편집하였다. 
    
    이런 생활 중에서도 그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꼭 찾아보았고 사랑을 실천하였다. 
    보편교회와 일치하는 에스파냐 교회를 재건한 성 이시도루스는 서방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교부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는 1598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722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3세(Innocentius XIII)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오늘날 에스파냐의 인문 대학부와 마드리드 지방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는 성 이시도루스는 
    2000년대 중반 교황청에 의해 인터넷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또한 컴퓨터 사용자와 컴퓨터 기술자들의 수호성인이다. 
    
    
    
    성 이시도로 주교 학자
    
    560년경 스페인의 세빌리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형님인 레안드로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세빌리아의 주교로 임명된 그는 해박한 많은 저서를 남겼고 스페인에서 많은 공의회를 소집하고 주관했으며, 
    그 공의회들은 훌륭한 규율들을 만들었다. 636년에 세상을 떠났다.
    
    성 이시도로 주교의 [명제집]에서
    (Lib. 3,8-10: PL 83,679-682)
    
    하늘 나라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
    
    우리는 기도로써 정화되고 독서로써 교훈을 얻습니다. 할 수 있다면 이 두 가지를 다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할 수는 없다면, 독서하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누가 하느님과 항상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자주 기도하고 또 자주 독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느님 자신과 함께 말하게 되며 독서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말씀하시게 됩니다.
    
    모든 영적 진보는 독서와 묵상에서 비롯됩니다. 독서로써 우리는 모르고 있던 바를 배우고 묵상으로써 
    이미 배운 것을 보존합니다. 성경 독서는 이중의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첫째로 지성을 비추어 주고, 
    둘째로 인간을 세상의 헛된 것들에서 이끌어 내어 하느님의 사랑에로 인도해 줍니다.
    
    독서에서도 이중의 목적을 찾아야 합니다. 첫째로 성경말씀의 뜻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며, 
    둘째로 그 말씀들을 효과적으로 또 합당하게 전하도록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읽는 사람은 무엇보다 읽는 것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 배운 것을 다른 이들에게 최상의 방법으로 전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잘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 읽는 것보다는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합니다. 
    알고 싶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고민입니다. 우리가 독서를 
    통하여 지식을 얻고자 하는 것처럼, 배운 후에는 우리가 배운 모든 좋은 것을 실천하고자 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다음의 말씀처럼 성경을 자주 읽어 친숙해지는 일입니다. 
    "지혜를 단단히 붙들어라. 그 지혜가 너를 높여 줄 것이다. 
    슬기를 품속에 간직하여라. 그 슬기가 너를 존귀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가 성경 독서를 더 자주 하면 할수록 더 풍부한 이해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마치 땅을 더 잘 경작하면 할수록 더 풍요한 추수를 거둘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수한 지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독서를 게을리 하여 독서로써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그 게으름으로 인해 경시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지식에 대한 애착심을 갖고 있지만 
    느린 이해력 때문에 장애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꾸준한 독서로써 더 우수한 지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얻지 못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느린 이해력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독서에 대한 대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우수한 지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게을리 하는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은혜를 경시하고 
    또 그 지력을 무익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죄인으로 단죄받게 됩니다. 은총의 도움 없이 두 귀에 주입되는 
    독서의 가르침은 결코 마음에까지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밖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지만 결코 내부에다 
    이익을 주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정신의 내부에 닿고 작용하여 이해력을 줄 때에, 
    비로소 귀로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 마음의 심층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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