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7일)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21:18 ㆍ조회:314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7일)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hn Baptist de la Salle) 축일 4월 7일
    신분 신부, 설립자, 교육자, 활동연도 1651-1719년


    같은이름-드라살, 밥띠스따, 밥티스타, 밥티스트,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annes Baptista de la Salle)은 1651년 4월 30일 랭스(Reims)에서
    고대 왕가 귀족 가문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불과 11세 때에 삭발례를 받았고, 16세 때에 랭스 주교좌성당 참사회원이 되었으며,
    소르본(Sorbonne) 대학교와 생 쉴피스(Saint Sulpice) 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1678년 27세 때에 사제품을 받았다.

    귀족 가문에서의 성장과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그는 루앙(Rouen)의 니엘(M. Nyel)이라는
    신자와의 만남을 통해 가난한 소년들을 위한 자선 학교를 세우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먼저 그의 고향에 자선 학교를 세우고 차차 그 주변으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하느님이 마련한 소명임을 깨달은 그는 가정과 가족을
    떠나 참사회원직마저 버리고 이 일에 전심으로 투신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넘겨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었다.
    그는 교사들을 훈련시키며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엄격한 자기 수련 생활을 따르도록 권유했는데,
    이러한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하는 수도 단체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결국 요한은 오랜 숙고 끝에 1684년 삼위일체 대축일에 12명의 학교 교사들과 함께 1년 동안
    수련기를 가진 다음, '그리스도 교육 수도회'라는 이름의 독특한 수도복을 입는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 평신도들을 훈련시킬 생각으로 1686년에 최초의 정규 학교를
    랭스에 설립하였으며 이어 또 하나를 파리(Paris)에 설립하였다. 1688년 랭스에서 파리로 수도회 본부를
    옮긴 수도회는 전국적인 성격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였다.
    초기에 파리의 대주교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의 수도회는 날로 확장되어
    지금은 17,000여명의 회원들이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초로 교사 교육을 실시한 인물이며, 교사들에게 자부적인 사랑을 불어넣은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교육 철학은 1720년에 출판된 "학교들의 지침서"(The Conduct of Schools)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루앙에서 중류 사회 상인들의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 학교를 설립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보다
    모국어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과목을 제공해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루앙의 기숙사 학교는 18세기 수도회에 의해 성공적으로 설립된 다른 많은 학교들의 표준이 되었다.
    그는 1719년 4월 7일 성 금요일에 루앙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모든 교사들의 주보성인으로 공포되었다.
    
    
    수도회 주축으로 ‘교육 혁신’ 주도
    ‘그리스도교 교육 수도회’ 창설… 교사들의 주보
    가난한 이들의 ‘교육 기회’ 마련에 일생 바쳐
    
    라살(세례자 요한, La Salle, Jean-Baptiste de, 1651~1719)은 교회 뿐만 아니라 
    서구의 교육사 안에서도 그 기여와 공헌이 빼어난 교육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오늘날 종종 ‘그리스도교 교육 수도회’(the Christian Brothers)로 불리우는 
    ‘그리스도교 교육 형제회’(the Institute of the Brothers of the Christian Schools)의 창설자로서 
    당대의 교육 풍토를 혁신한 개혁가이며 현대 교리교육의 아버지이다. 
    
    자선학교서 교육 전망 찾아
    
    1651년 4월 30일 프랑스 랭스(Reims)에서 부유한 고대 왕가 귀족 가문의 장자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법조계에 몸을 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놀라운 신심을 보인 그는 11세때 
    사제 수업에 들어가 16세에 랭스 주교좌 성당 참사회원이 됐으며, 27세에 사제품을 받았다. 
    잘 생긴 외모에 풍요로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평생을 헌신해야 할 일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육 사업임을 깨닫는다. 비록 평생을 바쳐 일해야 하는 그 길은 험한 가시밭길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의심 없이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17세기 프랑스의 사회 질서는 여전히 과거의 관습에 매여 있었다. 교육과 관련해 모든 교육 혜택은 
    부유한 귀족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대다수 민중들을 위한 이상적인 교육에는 전혀 관심도 배려도 없었다. 
    라살은 이러한 극단적인 무관심을 개탄했고, 이를 타파해 가난한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하는 것은 평생의 과제였다. 라살이 교육에 몸담기 시작한 처음부터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노력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제품을 받은 뒤 첫 임지는 한 수녀회의 영적 지도 신부였고 그 수녀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친척 중 하나이기도 한 부유한 여성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그에게 고아 소년들을 
    위한 시설을 세워줄 것을 요청했다. 
    여기에 아리앙 니겔이라는 한 평신도 교사가 합류하게 되고 성공적으로 시설을 운영함에 따라 
    곧 교구내의 여러 곳에 유사한 시설들이 세워졌고 이곳들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이뤄졌다.
    
    라살은 이러한 자선학교들에서 자신의 교육적 전망을 찾았지만, 문제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소집하고 받아들인 교사들과 직접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엄격한 수련 생활을 따르도록 권유하고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들을 모색해나갔다. 
    보수도 없고 너무나 고되고 힘든 일 때문에 몇몇 교사들은 이 자리를 포기하고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더 좋은 젊은이들이 이 일을 자청해주었다. 
    
    최초의 정규 학교 설립
    
    그러나 라살은 양질의 교사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신앙 안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도록 하는 목적을 위해서는 학교 설립보다도 오히려 그들에게 종교심을 키우고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는 일이 더 중요했고 이를 위해서 양질의 교사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바로 이를 위해서 그는 수도 단체 설립을 통해서 평신도들을 훈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침내 
    1684년 삼위일체 대축일을 기해 12명의 학교 교사들과 함께 1년 동안의 수련기를 거쳐 
    독특한 수도복의 수도회를 창립하게 된다. 바로 이 수도단체가 ‘그리스도교 교육 형제회’이다.
    
    1686년에 최초의 정규 학교를 랭스에 설립한 그는 파리에 두 번째 학교를 세웠다. 
    1688년 파리로 수도회 본부를 옮긴 후 교구 소속을 거부했으며 6년 뒤에는 12명의 형제들이 라살의 단체에 
    거주하면서 또 다른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라살은 1700년부터 여러 곳에 학교 문을 열었고 
    채 몇 년이 안되어 남부 프랑스 지역으로까지 학교를 확장했다. 
    
    수도회는 파리에서는 최초의 정규 보통학교를 설립했고 나아가 성인들을 위한 수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교육을 확장했고 루앙에서는 중류 사회 상인들의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 학교도 열었다. 
    1705년에 수도회는 다시 본부를 파리에서 루앙으로 옮겼는데, 
    이곳에서 그는 비행 청소년들을 위한 또 다른 기관을 설립한다. 
    
    라살의 교육 혁신은 당대의 여러 기득권자들로부터 반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얀센주의의 반대는 큰 장애요 골칫거리였다. 당시 프랑스에 널리 퍼져 적지 않은 
    주교와 성직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얀센주의는 그가 극복해야 할 큰 장애였다. 
    
    라살의 교육 개혁은 몇 가지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그의 교육 방법은 그의 회칙 안에 기초되어 있는데 
    1720년에 출판된 ‘학교들의 지침서’(The Conduct of Schools)에서 그는 이론이 아니라 
    엄격하게 실천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특별히 라틴어 대신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함으로써 
    선구자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했다. 
    
    1719년 루앙에서 세상을 떠난 그는 1900년 교황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시성됐고 
    비오 12세 교황은 1950년 그를 교사들의 주보성인으로 선포했다. 
    라살과 그의 수도회는 우리에게 교육의 가치를 새롭게 환기시킨다.
    [가톨릭신문, 2006년 12월 10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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