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3월 17일) 성 파트리치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17:06 ㆍ조회:310 ㆍ추천:0

오늘의 聖人(3월 17일) 성 파트리치오  
    
     
    
    성 파트리치오(Patrick) 축일 3월 17일  
    신분 주교, 선교사, 활동지역 아일랜드(Ireland) 활동연도 389?-493년 
    
     같은이름- 바드리시오, 빠뜨리시오, 빠뜨리시우스, 빠뜨리치오, 빠뜨리치우스, 파트리시오, 
               파트리치우스, 파트리키오, 파트리키우스, 패트릭  
    
    
       
    로마제국의 브리튼(현재의 영국) 식민지에서 지방의회 의원이었던 귀족 칼푸르니우스(Calpurnius)와 
    콘체사(Concessa)의 아들로 태어난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또는 파트리치오)는 389년경 스코틀랜드 
    던바턴(Dunbarton) 근처 킬패트릭(Kilpatrick)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16세 때에 아일랜드 해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 북아일랜드의 앤트림(Antrim)에서 6년 동안 
    양치기 생활을 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열정적인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꿈 속에서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어 탈출한 그는 200마일이 넘는 길을 헤맨 끝에 킬랄라(Kilala) 만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항해 준비를 마치고 있던 배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성 파트리키우스는 자신이 경험한 노예 생활을 자신의 회개를 위한 기간이자 앞으로의 사도직을 위한 
    하느님 섭리의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이 경험을 통해 아일랜드에 신앙을 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명에 따라 그는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 주교를 찾아가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4년 동안 머물렀고, 그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아일랜드를 회개시키려는 열망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교황청으로부터 그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432년경에 성 게르마누스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435년 3월 아일랜드에 도착하여, 아일랜드인들을 위한 초대주교였던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7월 7일)를 계승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은 수많은 원주민 추장들과 과감하게 만났고, 대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회개시킴으로써 섬 전체에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깊이 내렸다. 그는 442년과 444년에 로마(Roma)를 
    방문하였고 아마(Armagh) 대성당을 세워 아일랜드 선교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아일랜드에서 보낸 40년간의 활동에서 그는 학문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라틴어 공부를 비롯하여 아일랜드를 
    서방교회와 아주 가깝게 만든 공로자가 되었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기록한 영적 자서전인
    "고백록"(Confessio)을 썼는데 그것은 일종의 호교서이기도 하다.
    
    성 파트리키우스는 493년 3월 17일 처음으로 성당을 지은 아일랜드의 다운패트릭(Downpatrick)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상징은 뱀과 토끼풀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아일랜드에 있는 뱀들을 바다 속으로 몰아내어 없애 버렸다는 것과 
    그가 어떤 미신자에게 한 줄기에 잎사귀가 3개 달린 토끼풀을 가지고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였다는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아일랜드인들은 성 파트리키우스를 기념하는 성 패트릭 데이(Saint Patrick's Day)에 국화인 토끼풀을 
    옷깃에 달고 녹색 옷을 입는다.
     
    
    
    성 빠뜨리시오 주교(성인들의 발자취)
    
    삼위일체의 오묘한 진리를 클로우버 비유로 설명
    주교서품 후 「아일랜드」서 복음전파 - 축일은 3월 17일
    
    빠뜨리시오 성인은 387년 스코를랜드의 「킬패트릭」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 해적이 스코를랜드에 침임했을 당시 16세였던 빠뜨리시오는 해적들의 포로가 되어 
    불행하게 노예로 팔려가게 됐다. 그는 목동으로 가축을 지키면서 힘든 일을 하였고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며 끊임없이 기도생활을 했다.
    
    노예생활 6년이 지난 어느날 그는 꿈속에서 하느님으로 부터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지시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결단심을 갖고 탈주한 결과 성공하여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몇년 후 사제로부터 교황 첼레스띠노로부터 교황청에서 일하도록 임명 받았다.
    
    그러나 아일랜드에서 노예로 고생하는 동안 목격했던 이교도들의 가련한 생활이 오랫동안 그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빠뜨리시오는 아일랜드로 가길 원했다. 주교로 서품된 그는 자신을 비판하던 
    일부 성직자와 친척들의 반대에도 불구,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의 고국을 출발했다.
    
    그는 아일랜드 전역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고 
    사제서품을 하고 금욕생활을 하는 여성들을 격려했다.
    또한 그는 드루이드 교도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고 수도원을 설립, 
    사제를 양성하는 한편 많은 교회ㆍ학교를 세웠다.
    
    어느날 그는 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삼위일체의 오묘한 진리를 설명하는데 누구나가 이해하기 힘든지라 
    그는 마침 곁에있던 클로우버 한 포기를 손에들고 『이것은 한 포기 클로우버이지만 끝이 세 잎으로 되어 있다. 
    이같이 하느님께서도 한 분이시지만 그 위는 셋으로 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비유를 듣고 청중들은 
    비로소 삼위일체 개념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빠뜨리시오 성인은 그의 「고백록」에서 자신을 무지한 사람, 비천한 죄인으로 설명했다. 
    그는 선종하여 「얼스터」에 묻혔다. 성 빠뜨리시오 축일은 3월 17일인데 아일랜드에서는 그의 축일을 
    국가축일로 성대히 거행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1981년 3월 22일]
    
    
    성 파트리치오, 성 쿠트베르토, 성 핀바르, 성 라우렌시오오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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