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8일) 성녀 율리아 빌리아르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21:22 ㆍ조회:601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8일) 성녀 율리아 빌리아르  
    
    
     
    성녀 율리아 빌리아르(Julia Billiart) 축일 4월 8일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나무르(Namur) 활동연도 1751-1816년       
    
     같은이름-줄리아, 쥴리아  
    
    
    
    부유한 농가 태생인 성녀 율리아 빌리아르는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 지방의 보베(Beauvais) 교구에 
    속한 퀴비이(Cuvilly)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마리아 로사 율리아(Maria Rosa Julia)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늘 신앙생활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왔는데, 특히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녀는 신비스런 병으로 마비되어 걷지 못하였고, 혁명 정부에 선서한 사제들을 반대하고 
    또 도망을 다니는 사제들을 숨겨준 일들이 정부 당국에 알려지자 자신도 몸을 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얼마동안 몇몇 친구들과 더불어 아미앵(Amiens)에 머물렀다. 
    후일 그 친구들이 그녀가 수도회를 설립하였을 때 초기 회원들이 되었다. 
    그녀는 여기서 '신앙의 사제회' 원장 신부인 바랭(R. P. Varin) 신부를 만났다. 
    
    1804년 성녀 율리아는 자작 부인 프랑수아즈(후에 수도명을 요셉이라 함)와 함께 아미앵 교구장의 후원과 
    바랭 신부의 지도하에 노트르담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가난한 어린이들의 종교교육과 신앙교사들의 
    훈련 및 여성들의 그리스도교 교육에 헌신하려는 목표로 설립되었다. 그들은 고아원도 개설하였다. 
    그리고 수녀원이 설립된 해에 성녀 율리아는 아미앵 선교 도중 앙팡탱 신부가 9일 기도를 바친 후 자신에게 
    걷도록 명했을 때 기적적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실로 22년 만에 걸음을 걷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바랭 신부가 떠나고 그의 후계자로 노트르담 수녀회의 고해사제로 임명된 신부가 이 수녀회에 대하여 
    반목하는 처지로 돌변하자, 아미앵의 주교는 1809년 내에 성녀 율리아로 하여금 아미앵 교구를 떠나도록 명하였다. 
    
    그래서 성녀 율리아는 수녀회 모원을 벨기에 남부, 프랑스와 국경을 이루는 나무르로 이동하였다. 
    물론 그 사건은 나중에 무마되었지만 그녀는 모원을 그곳에 그냥 두었다. 그녀는 여생을 수녀회의 확장을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으며 15개의 수녀원이 세워지던 1816년 4월 8일 과로와 노환으로 나무르에서 운명하였다. 
    그녀는 1906년 5월 13일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69년 6월 22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녀 쥴리 빌리아르(St. Julie Billiart, 4월 8일)
    노틀담수녀회 어머니...교리 교육, 수도자 양성에 남다른 열정
    1751-1816. 프랑스 피카르디 출생. 노틀담 수녀회 영성의 어머니.
    
    가톨릭 교리에 일찍 눈을 뜬 성녀는 7살 때 이미 하느님 말씀과 가르침을 깨우쳐 
    또래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정도였다.
    
    성녀의 남다른 영적 성장을 눈여겨 본 지역 본당 사제는 성녀가 9살이 되던 해 첫영성체를 허락했다. 
    그 당시 첫영성체는 13살이 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성녀는 성체를 영하면서 순결과 정절을 지킬 것을 
    스스로 다짐했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더욱 키워갔다.
    
    성녀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밭일을 하면서도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자 마을 사람들은 
    16살 어린 소녀의 가르침과 영성에 탄복하며 성녀를 살아있는 성인이라고 부르곤 했다.
    
    성녀가 22살이 되던 해 집안에 무장 강도가 들었다. 
    그 때 충격으로 쓰러진 성녀는 하반신이 마비돼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20년 넘게 침대에 누워 생활했지만 성녀는 매일 성체를 영했고 묵상과 기도의 삶을 이어갔다.
    
    성녀는 움직일 수 없게 됐지만 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마을 어린이들은 성녀의 침대 주변에서 교리를 듣곤했다.
    
    어느날 기도 중에 수녀들에게 둘러쌓인 십자가 예수의 환영을 보게 된 성녀는 
    이후 여성 성소자들을 양성하는데 더욱 매진하게 된다. 성녀는 1803년 프랑스 아미엥에서
    8명의 여자 고아들을 모아 가르치는 것으로 노틀담수녀회 설립 기초를 닦았다.
    
    이듬해 기적적으로 하반신 마비가 풀리자 자신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기쁘게 달려가 교리를 가르쳤다. 
    벨기에로 건너간 성녀는 나뮤르지방에 노틀담수녀회를 설립한 것을 비롯해 선종하기 전까지 
    15개의 수녀원을 설립하며 수도자 양성에 힘썼다.
    성녀는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평화신문, 제1013호(2009년 4월 5일), 박수정 기자]
    
    
    
    
                       
  0
100
이름
비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