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8일) 성 발테르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21:21 ㆍ조회:134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8일) 성 발테르  
    
    
     
    성 발테르(Walter) 축일 4월 8일  
    신분 수도원장, 활동지역 퐁투아즈(Pontoise) 활동연도 +1095/1099년     
    
     같은이름-발떼르, 발터, 왈터, 월터  
    
    
    
    성 발테르는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 출신으로 학문의 여러 전당에서 공부하여 철학과 수사학의 
    저명한 교수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러베앙브리(Rebais-en-Brie)의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국왕 필립 1세로부터 천거되어 퐁투아즈에 신설된 새 수도원의 원장으로 뽑혔다. 
    그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 통치자로부터 주교직을 받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지 폐하의 사람이 아니며, 교회로부터 직책을 수여받습니다.” 
    용기 있는 그의 이 말로 인하여 국왕 필립은 그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퐁투아즈를 몰래 떠나 클뤼니(Cluny) 수도원으로 가서 숨은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다시 원래 수도원의 원장으로 되돌아왔으나 재차 도망하여 
    로와르 섬의 어느 은둔소로 피신했다가 또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결국 그는 직접 로마로 가서 교황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에게 이 짐을 풀어달라고 
    청했지만 교황은 그의 탁월한 능력을 수도회를 위해 사용하고 그곳을 떠나지 말라고 명했다.
    
    그가 은둔소에서 철저한 고행을 하며 겪은 고통은 성직 매매자들의 반대에서 오는 고통에 비기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떤 때에 그는 같은 동료 수도자들의 모함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고 
    심하게 매를 맞은 경우도 있었다. 만일 어떤 수도자가 그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원장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던 중 1095년 또는 1099년 성 금요일에 
    성무일도를 바치던 중 탈혼에 빠졌고, 그길로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그는 월터로도 불린다. 
     
    
    
    성 발테르(St.Walter, 4월 8일)
    1030~1099년, 프랑스 출생 및 선종,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장.
    
    성인은 원래 대학에서 철학과 수사학을 가르치던 교수였습니다. 
    하지만 뜻한 바가 있어 성 베네딕도회에 입회했습니다. 
    세상을 떠나 오로지 하느님만 바라보며 기도하고 공부하는 삶을 꿈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원하던 삶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교수로 활동하다 수도자의 길을 걷는 성인을 눈여겨본 
    필립 1세 국왕은 그를 퐁투아즈 지역에 새로 생긴 수도원 원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당시에는 국왕이나 지역 영주도 성직자와 수도자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국왕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습니다. 
    수도원을 이끌면서도 틈틈이 수도원장 자리를 내려놓을 기회를 엿봤습니다. 
    때로는 아무도 몰래 수도원을 빠져나와 다른 지역 수도원에 숨어지내다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로마에 가서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을 만나 수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교황은 성인의 탁월한 성품과 학식을 썩힐 순 없다는 이유로 성인의 청을 거절합니다. 
    
    수도원장으로 있는 동안 성인은 수도자들에게 엄격한 수도 생활을 요구했습니다. 
    늘 고행하고 검소하게 지낼 것을 당부했습니다. 
    성직 매매나 부정부패, 비리에 연루된 이들은 가차 없이 내쳤습니다. 
    성인을 따르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만큼 성인을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결국 반대자들에게 탄압받은 성인은 감옥에 갇히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성인은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매일 죽도록 얻어맞았습니다.
    옆에서 보다 못한 죄수들이 성인을 돌봐 줄 정도였습니다. 
    
    옥살이를 견디지 못한 성인은 1099년 성금요일에 성무일도를 바치던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인은 퐁투아즈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프랑스 혁명 때 성인 유해가 분실됐다고 합니다.
    [평화신문, 2015년 4월 5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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