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2월 27일) 성 가브리엘 포센티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09:24 ㆍ조회:328 ㆍ추천:0

오늘의 聖人(2월 27일) 성 가브리엘 포센티  
    
     
    
    성 가브리엘 포센티(Gabriel Possenti) 축일 2월 27일  
    신분 수사, 신학생, 활동연도 1838-1862년  
    
     같은이름- 가별, 뽀센띠, 뽀센티 
    
    
    
    1831년 3월 1일 이탈리아의 아시시(Assisi)에서 법률가인 산테 포센티(Sante Possenti)의 13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난 성 가브리엘 포센티는 프란치스코(Francisc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4살 때에 어머니를 잃고 큰누나 밑에서 자랐으나 그 누나가 콜레라로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부친이 스폴레토(Spoleto)의 세액 사정관으로 임명되자 그는 예수 고난회에 입회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곳의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매우 지성적이며 능력이 뛰어났고, 문학과 예술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깊은 신앙심과 성모님에 대한 신심,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높은 애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1856년 9월 21일 마체라타(Macerata) 부근의 모로발레(Morovalle)에서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여 수련자가 되었다. 
    그리고 1857년 9월 22일 첫 서약을 하면서 그에게는 '성모 통고의 가브리엘'(Gabriel a Virgine Perdolente)이라는 수도명이 
    주어졌다. 그는 이때부터 사소한 일에서도 완덕을 얻으려는 특별한 노력으로 일생을 살았다. 그의 밝은 성품, 기도 정신,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 규칙 엄수, 육체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닮으려는 열망이 그의 모든 생활에서 빛을 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짧은 수도생활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덕을 닦을 수 있었다.
    
    1861년에 소품들을 받은 그는 대품을 받을 준비를 계속하였지만 6년 동안의 수도생활로 체력이 소진되어, 
    1862년 2월 27일 이탈리아 테라모(Teramo) 지방의 이솔라 델 그란 사소(Isola del Gran Sasso)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수도회가 이솔라 델 그란 사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 성당에 안치되었으며, 지금까지 그곳에 남아 있다. 
    이후 그의 무덤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성녀 젬마 갈가니(Gemma Galgani, 4월 11일)가 그에게 기도함으로써 
    치유된 일도 있었다.
    
    그는 1908년 5월 31일 로마의 바티칸 대성전에서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로부터 시복되었고, 
    1920년 3월 13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성되었고, 아브르초(Abruzzo) 지방의 수호성인이며, 
    청소년, 특히 수련자와 신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가톨릭 활동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의 수호성인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가브리엘 포센티(St. Gabriel Possenti, 2월 27일)
    
    
    
     
    몸은 약했지만 신심만은 강해
    예수 고난회 입회, 모범적 생활하며 고통에도 미소 잃지 않아
    1838-1862. 이탈리아 출생 및 사망. 예수 그리스도 고난 수도회 수련자. 가톨릭 청년과 신학생의 수호성인.
     
    성 가브리엘 포센티는 25살에 짧은 생을 마감한 성인입니다. 
    그는 18살에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기 전가지 부잣집 아들로 아쉬울 것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머리도 좋고 학업성적도 뛰어나던 그는 문학과 예술분야에도 재능을 보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였지만 
    하느님께서 건강만은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자주 아프곤 했던 그는 아플 때마다
     ‘하느님, 제 병을 낫게 해주시면 꼭 하느님께 저를 봉헌하겠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조금 좋아지면 언제 그런 기도를 바쳤냐는 듯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성인의 기도를 잊지 않으신 하느님은 결국 성인을 성소의 길로 이끄십니다.
     
    성인이 살던 마을에 콜레라가 퍼지자 마을 주민들은 성모 이콘을 들고 행렬하며 
    성모께 콜레라를 물리쳐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모 행렬이 성인 앞을 지나갈 때 성인은 성모께서 
    ‘왜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아느냐’고 물으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성인은 세속의 즐거움에 빠진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플 때마다 자신이 바쳤던 기도를 떠올리며 하느님 아들로,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성인은 1856년에 예수 그리스도 고난 수도회(예수 고난회)에 입회해 그 누구보다 수도회 규칙을 철저히 따르며 
    모범적 생활을 합니다. 수도원 내에서 기도생활과 묵상, 단식과 고행을 하는 데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습니다. 
    몸이 약한 그를 걱정한 수도원장이 그에게 단식을 그만둘 것을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수도생활 내내 결핵으로 고생했던 그는 아픈 와중에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사제품을 준비하던 그는 결국 지병으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후 그의 전구로 많은 치유 기적이 일어났는데, 
    성녀 젬마 갈가니도 성인 전구로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성인은 1920년 교황 베네딕토 15세에 의해 시성됐고, 교황은 성인을 가톨릭 청년과 신학생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성인은 통고의 모후 성 가브리엘(St. Gabriel of Our lady of Sorrow)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탈리아 아부르초 그랑사쏘 지방에 있는 성인 성지에는 해마다 많은 순례객과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1년 2월 27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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