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3월 9일) 성 그레고리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16:11 ㆍ조회:324 ㆍ추천:0

오늘의 聖人(3월 9일) 성 그레고리오  
    
     
    
    성 그레고리오(Gregory) 축일 3월 9일  
    신분 주교, 교부, 신학자  활동지역 니사(Nyssa) 활동연도 335?-395년? 
    
     같은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성 바실리우스(Basilius, 5월 30일)와 성녀 엠밀리아(Emmilia, 5월 30일)의 
    아들로서,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태어나 그의 형인 성 대 바실리우스(1월 2일)와 
    누나인 성녀 마크리나(Macrina, 7월 19일)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기에 
    수사학자가 되어 테오세베이아(Theosebeia)와 결혼하였다. 그는 수사학 교수가 되었으나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우스(1월 2일)의 영향으로 수도생활을 시작한 후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아르메니아(Armenia)의 니사 교구의 주교가 되었으나, 아리우스파(Arianism)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폰투스(Pontus)의 집정관으로부터 교회 재산을 남용했다는 무고를 받고 투옥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도망쳤는데, 그라티아누스(Gratianus) 황제가 그를 다시 복직시켰다. 
    379년 그는 멜레티우스(Meletius) 이단을 단죄한 안티오키아(Antiochia)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이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팔레스티나(Palestina)와 아라비아의 이단들을 척결하도록 파견되었다. 또한 그는 381년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도 참석하여 아리우스(Arius) 이단을 공격하고, 니케아(Nicaea) 선언문을 재확인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래서 그는 정통교회의 수호자로 칭송을 받았다. 그는 오리게네스(Origenes)와 플라톤(Platon)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신학자로서 많은 논문을 남겼다. 제2차 니케아 공의회(680-681년)는 그를 '교부들 중의 교부'로 선포하였다. 
    
    
    
    그리스도교 영성사 - 교부들의 영성
    가빠도기아의 교부들
    
    닛사의 성 그레고리오(약 331~394)
    
    바실리오가 행정가였다면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는 신학자였고 닛사의 그레고리오는 철학자와 신비가로 이름이 높다. 
    그는 교회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독서직을 받고 업무를 시작하였으나 수사학자가 되려고 교회의 직무를 버리고 
    결혼하여 세상의 일을 하다가 아내가 죽은 뒤에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의 권유로 성직에 입문하여 
    형 바실리오가 시작한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하던 중 닛사의 주교가 돼 열성을 다하였 으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곤란을 당하기도 하였다. 바실리오가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어 교회의 중추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의 주요 사상은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과 그리스도의 강생에 있다.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소우주인 인간은 창세기 1장 26절의 내용처럼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되었다. 
    인간은 비록 타락하였으나 자유의지와 여러 가지 덕목들을 경험하면서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를 넘나든다. 
    타락된 인간의 모습에만 매달리면 염세주의에 빠질 수 있으나 인간의 육신을 취하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구속된 인간은 하느님과 우정을 회복하게 되고 물질계에서 해방되어 신적인 것에로 향하게 된다. 
    인간이 모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그리스도이다.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그분을 모방해 나감으로써 물질계에 
    빠지는 인간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고 그분을 소유함으로써 그분처럼 될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00년 10월 29일, 전달수 신부(안동교구 다인본당)]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이 세상에서도 천국의 복된 삶을 미리 체험할 수 있다. 여기에 이르는 첫 번째 과정은 
    '영혼의 거울' 이다. 영적 감각, 즉 마음속의 모든 번민과 욕망이 사라 질 때 자신의 아름다움 안에서 신적 본성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인간은 죄스런 욕망 안에서 잃어버렸던 것을 하느님에 의해 이 우주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높은 단계는 신비 체험의 차원인데. 수행과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깨끗해진 
    영혼은 하느님의 무한하심을 직면 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하여 영혼은 서서히 신적인 존재로 되어 간다. 
    
    아가에 관한 설교 11장에서 그는 하느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단계를 셋으로 서술하였다. 
    첫째는 불타는 가시덤불의 빛 속에서, 두번째는 이집트를 탈출하여 사막으로 여행할 때 구름 속에서, 
    세번째는 완전한 암흑 속에서이다. 이는 영혼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영혼은 맨 먼저 눈에 보이는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그 다음으로는 영혼이 진보함에 따라 감추어진 신비를 
    관상하는 단계로서 지성이 감각적인 것을 모두 가리는 구름 구실을 한다. 마지막은 영혼이 인간 본성에게 가능한 한 
    현세의 모든 것을 포기할 때 그것은 완전히 신적 어둠에 쌓인 하느님에 관한 인식의 성소로 들어가게 된다. 
    그가 참된 신학(theognosis)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어둠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톨릭신문, 2000년 11월 5일, 전달수 신부(안동교구 다인본당)]
    
    
    
    교부들의 가르침: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신학자, 성서주석가로 활발한 활동 
     
    가계
    교회사에서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집안만큼 뛰어난 가문은 그리 많지 않다. 조부모가 고백자(증거자)인데다, 
    할아버지는 순교자였다. 할머니 마크리나 1세는 오리게네스의 학생이자 네오체사레아의 주교인 그 유명한 기적가 
    그레고리우스의 제자였다. 그레고리우스의 아버지는 폰투스 출신으로 네오체사레아에서 수사학자로 활동하였다. 
    그는 막내아들 베드로가 태어난 뒤 얼마 안되어 사망하였다. 어머니 엠멜리아 역시 카파도키아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동생이 주교였다. 그레고리우스에게는 모두 아홉 남매가 있었는데, 누이 마크리나(329년 이전 탄생)와, 
    형 바실리우스(329/30년 탄생), 그리고 그레고리우스(335/40년경 탄생)가 셋째이며, 베드로(340/45년경 탄생)가 막내이다. 
    일찍 죽은 나우크라티우스 이외에 네 명의 누이를 두었으며, 아마도 모두 결혼한 것 같다. 
    그 가운데서도 마크리나는 동생들을 도와 말없이 그들을 거룩한 길로 인도하였고, 대 바실리우스, 그레고리우스, 
    베드로는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 교의에 영향을 미쳐 큰 업적을 남겼다. 아버지가 죽은 뒤 얼마 안 되어 
    그레고리우스의 가족은 네오체사레아 근처에 있는 안네시의 농장으로 집을 옮겨갔다. 장녀 마크리나는 그곳에 
    수도 공동체를 조직하였다. 이렇듯 할머니 마크리나 1세, 엠멜리아, 마크리나 2세, 대 바실리우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베드로가 성인으로 공경 받을 정도로, 그레고리우스는 훌륭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생애 
    그레고리우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자신에 관한 자료를 전혀 남기지 않았으며, 
    동시대인들과 동시대의 기록들도 그를 드문드문 언급할 뿐이다. 바실리우스는 아테네에서 돌아 온 뒤 잠시 갑파도키아의 
    체사레아에서 수사학 선생으로 활동하였다.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이 '스승' 또는 '아버지'라고 부른 바실리우스에게 
    수사학을 배웠다. 그는 처음에 교회의 독서자였다가, 한때 그리스도교 금욕적 이상을 벗어나려 하기도 하였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는 이를 두고 그를 나무라는 듯한 편지를 보냈다. 바실리우스와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가 
    금욕적 이상에 자신의 삶을 바치려 할 때 오히려 그레고리우스는 세상으로 향했으며 수사학자가 되고자 하였다. 
    특히 율리아누스 황제(361~363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직업을 금지한 뒤에 더 큰 매력을 준 것 같다. 
    이 시기에 그레고리우스는 같은 신분계층의 여인인 테오세베이아를 만나 결혼한 것 같다. 
     
    그는 집안의 경건한 분위기에 얼마간 반항적이었다. 그 일화로 그는, 안네시에서 멀지 않은 이보라에 세바스테이아 
    출신인 40명의 순교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세운 묘 축성에 오라는 어머니의 초대에 처음에는 응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가기는 했지만 너무 늦었다. 가족과 참석자들은 이미 정원에 나와 성유물함을 위해 밤기도를 바치고 있었고, 
    웅장한 시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이웃집에서 그날 밤을 보냈다. 
    그런데 꿈에 그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다. 그가 정원에 들어서려고 했을 때 한 무리의 군인이 문 앞에서 막고 서서 
    막대기로 그를 위협하였다. 온유한 노인이 나타나 그들에게, 젊은이의 우유부단함을 용서하라고 간청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심하게 얻어맞았을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자신이 꿈에서 본 것이 리키니우스 황제 치하 때 
    아르메니아의 산악지대 호수에서 죽은 40명의 순교자들이었음을 깨달았다. 
     
    372년 카파도키아 지방이 둘로 갈라지자 바실리우스는 제1카파도키아에 주교좌를 늘려 형제와 친구들을 주교로 임명하였다. 
    이때 바실리우스는 그레고리우스를 체사레아에서 안키라 쪽으로 국도에 자리한 니사의 주교로 임명하였다. 
    바실리우스의 진술에 따르면, 그레고리우스는 천재였지만 어린애 같고 세상물정에 어두웠다. 어쨌든 그레고리우스는 
    주교 재임 동안 첫 7년은 직무를 수행하느라 꽤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 그 당시에 이미 '대(大)'라는 경칭이 붙은 
    바실리우스는 카파도카아 지방 수도인 체사레아에서 주교직을 맡은지 9년 만인 379년 새해에 죽었다. 
    그레고리우스는 그때까지만 해도 온실의 화초처럼 살았지만 그 뒤로는 소나무가 되었다. 그는 영향력 있는 교회정치가, 
    실제적인 교의문제를 해결한 신학자, 존경받는 연설가, 설교가, 성서주석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더욱이 바실리우스의 작품들도 더 높은 철학적 단계로 끌어 올렸다. 
     
    그레고리우스와 마크리나 
    379년 가을, 40대에 들어선 그는 안티오키아의 멜레티우스가 소집한 교회회의에 참석하러 안티오키아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한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마크리나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그에게 마크리나에 관해 글을 쓰고 그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크리나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372년부터 8년 동안이나 보지 못한 그녀를 방문하였다. 
    마크리나가 죽기 바로 전에 그는 그녀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영혼과 부활」을 출판하고 그 뒤 그녀의 생애를 집필하였다. 
    이 '생애'를 처음 영어로 번역한 학자는 이 소책자가 기원후 4세기가 아니라 기원전 4세기에 씌었다면, 고전 세계문학에 
    속했을 것이라며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영적 스승인 마크리나를 늘 생각하였다. 
    요한이라는 사람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마크리나를 추억하는 짧은 글을 적어 보냈다.
     "우리에게 누이는 우리 삶의 스승이자 어머니를 뒤이은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매우 솔직하게 하느님과 
    대화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힘을 솟게 하는 성곽이요, 하느님 마음에 드는 무기였으며, 
    벽으로 둘러싸인 성채와 같았습니다"(니사의 그레고리우스, 편지 19, 6). 
     
    신비신학 
    그의 신비신학에서는 필립 3,13에 따라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내뻗음'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그는 영혼의 영적 상승을 
    나타내는 이 개념을 노년의 작품인 "모세의 생애"에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하느님 자신은 참된 덕이시며, 
    이해할 수 없고 끝없는 분이시다. 인간은 이 참된 덕을 사랑하고 열망해야 하며, 하느님 자체인 완전함에 이르기 위해 
    늘 이 목표에 전념해야 한다. 뱃사람이 가고자 하는 항구의 신호등에 뱃머리를 맞추듯 말이다. 
    성서에 나오는 성인들도 삶의 목표에 도움이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인간이 추구하는 완전한 삶에 관한 논고를 
    모세의 생애로 구체화한다. [가톨릭신문, 2003년 6월 29일]
    
    
    
    
                       
  0
100
이름
비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