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24일) 성 피델리스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8:41 ㆍ조회:329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24일) 성 피델리스  
    
    
     
    성 피델리스(Fidelis) 축일 4월 24일  
    신분 신부, 선교사, 순교자, 활동지역 지크마링겐(Sigmaringen) 활동연도 1578-1622년  
    
     같은이름- 삐델리스   
    
    1578년 10월 독일 슈바벤(Schwaben) 지역의 지크마링겐에서 태어난 성 피델리스는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교를 마치고 법학박사 과정을 밝으면서 그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이때 그는 스스로 회개생활을 시작했는데, 고행자의 옷을 입고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1604년 그는 잠시 귀족 자제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봉직하다가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의 아인지스하임(Ensisheim)에서 변호사로 개업하면서부터 
    그의 인격과 학문이 괄목할 정도로 발전하였고 또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후 그는 1612년에 사제품을 받고 그해 10월 4일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피델리스라는 수도명을 얻었다. 그는 사제 서품을 앞두고 자신의 유산을 반으로 나누어서 
    한 몫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른 한 몫은 신학교를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주교에게 증정하였다. 
    사제로 서품된 후 그는 주로 설교와 고해성사를 주는 임무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그의 인품과 재능을 익히 알고 있던 주교는 스위스 그리존(Grison) 지방의 
    츠빙글리파(Zwinglian)에게 파견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하도록 명하자, 
    그는 8명의 다른 카푸친 작은 형제회 회원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 지방 사람들은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하는데 그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며칠 밤을 기도하면서 지냈다. 1622년 2월 24일 그루쉬(Grusch)에서 열정적으로 
    설교한 뒤 한 동안 탈혼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 그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사들을 죽여라!'라는 
    외침을 무시하고 세비스(Sewis)로 돌아와 미사를 봉헌하다가 성난 군중들 앞에 당당히 나아가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다.”는 설교를 하고 군중들의 공격을 받아 
    1622년 4월 24일 순교하였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츠빙글리파 성직자들이 개종하였다. 
    그는 1729년 3월 12일 시복되었고, 1746년 6월 26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피델리스 식마린겐 사제 순교자
    
    1578년 독일의 식마린겐 읍에서 태어났다. 카푸친회에 들어가 보속과 밤샘과 기도의 고된 생활을 영위했다. 
    열심한 설교자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였고 포교성성으로부터 스위스 그라우뷘덴 지방에 정통 교리를 
    전파하라는 명을 받았다. 거기에서 이단자들에게 추적당해 1622년 스위스에서 순교했다.
    
    성 피델리스 사제 순교자에 대한 찬사에서
    
    피델리스는 그 이름 자체에도 삶에도 충실했다
    
    교황 베네딕도 14세는 가톨릭 신앙의 옹호자인 성 피델리스를 칭송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피델리스가 지닌 사랑의 풍성함은 이웃의 육신상의 필요를 채워 주고 도와주는 데까지 뻗어 나아가, 
    아버지다운 자애의 포옹으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맞아들이고 여러 군데에서 애긍을 모아 
    수많은 가난한 이들을 부양하였다.
    
    세력 있는 사람들과 황태자들로부터 도움의 길을 마련하여 과부와 고아들의 외로움을 덜어 주었다. 
    또 감옥에 갇힌 이들을 자기 힘 닿는 데까지 육신적으로 영신적으로 모든 수단을 다해 도와주고, 
    병자들을 찾아 위로하고 하느님과 화해시키며, 그들이 맞이할 마지막 투쟁을 잘하도록 
    준비시키는 데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는 그라우뷘덴에 주둔했던 오스트리아 군대가 전염병에 걸려 고통과 죽음의 비참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 더 위대한 자선 행위의 열매를 거둔 일은 또 없다."
    
    그 이름 자체에도 삶에도 충실했던 성 피델리스(충실한 사람이라는 뜻)는 이 위대한 자비로써 뿐만 아니라 
    지칠 줄 모르고 선포했던 가톨릭 신앙의 옹호자로서도 뛰어났습니다. 자신이 피를 흘려 자기 신앙을 
    고백하기 며칠 전에 한 마지막 강론에서 흡사 유언처럼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오 가톨릭 신앙이여, 너는 얼마나 항구하고 얼마나 튼튼하며 얼마나 훌륭하게 뿌리박고 있으며 
    또 얼마나 견고한 반석 위에 잘 세워져 있는가! 
    하늘과 땅은 사라져 버릴 것이지만 너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 
    시초부터 온 세상은 너를 거슬러 말해 왔지만 너는 모든 것을 누르고 힘차게 승리를 거두어 왔도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바로 세력 강한 임금들을 그리스도의 법에 
    복종시키고 민족들이 그리스도를 섬기게 하였습니다. 신앙이 아니라면, 무엇보다 부활에 관한 신앙이 아니라면, 
    무엇이 거룩한 사도들과 순교자들로 하여금 치열한 투쟁과 혹심한 고통을 겪도록 하였겠습니까?
    
    산 신앙이 아니라면 무엇이 은수자들로 하여금 쾌락을 멸시하고 명예를 가벼이 여기고 
    재산을 발로 밟아 버리고 고독 속에 독신 생활을 하도록 했겠습니까? 
    무엇이 오늘날의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안이하고 유쾌한 것을 버리고 
    고통을 참으며 수고를 감수하게 해줍니까?
    
    '사랑으로 표현되는' 산 신앙입니다. 이 신앙이야말로 사람들이 미래의 보화를 희망하면서 
    현재의 보화를 포기하도록 하고 또 현재의 것을 미래의 것으로 바꿈질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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