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1월 14일) 성 사바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2:34 ㆍ조회:344 ㆍ추천:0
오늘의 聖人(1월 14일) 성 사바
     
     
    
    성 사바(Sabas)  축일 1월 14일  
    신분 대주교, 활동지역 세르비아(Serbia) 활동연도 1174-1237년 
    
     같은이름-사바스   
    
    중세의 세르비아 왕국인 네만야(Nemanya) 왕조를 세운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의 셋째 아들인 
    성 사바는 17세 때에 그리스의 아토스 산(Mount Athos)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부친의 도움으로 세르비아 수도자들을 위하여 아토스 산에 수도원을 따로 세운 후 원장으로 봉사하였다. 
    그러다가 1207년 그의 형제인 스테파누스 2세와 불칸(Vulkan) 사이에 불화와 내전이 발발했을 때 
    고향으로 잠시 돌아가기도 했었다.
    
    수많은 수도자들과 함께 돌아온 그는 스투데니카(Studenica)에 수도원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온 나라의 개혁, 
    특히 교육을 위하여 헌신하여 땅에 떨어졌던 신앙과 교육이 부흥되기 시작하였다. 
    그의 노력은 국민들의 단결을 불러 일으켰고 교회 또한 크게 융성하게 하였다. 
    그는 방인사제와 주교를 존중하여 그들에게 교회를 맡김으로써 더욱 발전시키는 덕을 지녔다. 
    그는 두 차례나 성지를 순례했는데, 두 번째 순례 중 불가리아(Bulgaria)의 티르노보(Tirnovo)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세르비아의 수호성인이다. 그는 사바(Sava)로도 불린다. 
    
    
    
    세르비아의 성 사바 
     
    성인은 중세 때 비잔틴(Byzantium)에서 독립하여 세르비아 왕국의 네만야(Nemanya) 왕국을 세운 
    스테파노 1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7세에, 아토스(Athos) 산의 한 수도원에 들어가는데, 
    후일(1198년) 그의 아버지도 왕관을 버리고 수도자로서의 삶에 자신을 봉헌한다.
     
    그는 세르비아의 수도승들을 위하여 아토스 산에 카이만다리(Kimandari) 수도원을 세우는데, 
    이 수도원은 세르비아인들의 종교와 문화생활에 있어서 한 초점(焦點)을 이룬다. 
    지금도 이 수도원은 아토스 산에 존재하는 주요한 열일곱 수도원의 하나로 불린다. 
    그는 이 수도원의 아빠스로 선출되는데, 젊은 수도승들을 교육하고 양성하는데 있어서 탁월하고 부드러웠다.
     
    그는 1206년에 다시 세르비아로 돌아오는데, 그의 두 형제들인 스테파노 2세 왕과 불칸(Vulkan)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세르비아로 올 때에 몇몇 수도승들과 동행했는데, 낮은 생활 수준, 
    매우 소수의 성직자, 무지, 이교주의가 만연하던 나라에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리스도교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와 동료 수도승들은 온 나라를 재복음화하기 시작하는데, 스투데니카(Studenica)에 수도원을 세우고는 
    자신과 수도승들이 사목과 선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그 수도원에 속한 작은 수도공동체를 건설한다.
     
    당시 세르비아 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이나 불가리아의 오리드(Ohrid)에 의해 통치를 받았는데, 
    양측의 교회 지도자들은 세르비아 교회를 바바리아인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목을 등한시했었다. 
    이에 사바와 스테파노 2세 왕은 세르비아 교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교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사바가 니케아로 파견되는데, 당시 황제의 지원에 힘입어, 사바는 세르비아 교회의 교계를 위한 
    지카(Zica)의 대주교로 임명받는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교회를 건설한다.
     
    그는 다시 아토스 산의 수도원으로 돌아온다. 그는 시편과 많은 전례서들을 번역하고 수도승들을 재교육하는 
    일에 헌신하면서 세르비아 교회를 재정비한다. 그는 여러 교구들을 세우고 수도원과 본당들을 건설하는 등 
    지칠 줄 모르고 일했다. 그는 생애 말년에 팔레스티나의 예루살렘으로 두 번의 성지순례를 하는데, 
    두 번째 순례에서 돌아오는 길에 불가리아에서 숨을 거둔다. 그렇게 그는 이 지상의 삶으로부터 
    그가 열렬히 사랑하면서 일생을 바치고 헌신하던 그분의 나라를 향해 영원한 순례길을 떠났다.
     
    거룩함, 헌신, 실천 등으로 한생을 살았던 그는 세르비아 교회의 주보성인인 한편 
    로마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의 분리를 이룬 장본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는 로마교회의 크로아티아 교구들과 세르비아의 그리스 정교회에서도 모두 존경을 받으며, 
    몇몇 라틴교회에서도 한 계몽자로서 그를 존경한다. (윤 클레멘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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