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13일) 성 헤르메네질도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1:29 ㆍ조회:208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13일) 성 헤르메네질도  
    
    
    
    성 헤르메네질도(Hermenegild) 축일 4월 13일  
    신분 왕자, 순교자, 활동연도 +585년     
    
     같은이름-헤르메네길도, 헤르메네길두스, 헤르메네길드, 헤르메네길트, 헤르메네질두스, 헤르메네질드 
    
     
    
    성 헤르메네길두스(Hermenegildus, 또는 헤르메네질도)는 에스파냐 서고트족(Visigoths)의 
    레오비길두스(Leovigildus) 왕과 그의 첫 번째 부인인 테오도시아(Theodosia)의 
    아들로서 아리우스(Arius) 이단에 젖어 있던 부친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열렬한 정통파 신앙인인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시제베르트(Sigebert) 
    왕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올바른 신앙을 되찾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부친은 아들에게 준 모든 소유와 지위를 박탈하려 하였다. 
    그러자 헤르메네길두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며 아리우스 이단과의 투쟁을 선언하고 전투에 들어갔다. 
    그러나 차츰차츰 아들의 입장을 이해한 부친이 화해하고 그전의 지위를 회복시켰으나, 
    계모로 들어선 고스빈다(Gosvinda)는 자신이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계략으로 
    그를 투옥시키고 군인들을 보내어 살해하였다. 
    그는 아리우스 이단을 죽음으로 거부하여 정통 신앙을 지킨 순교자로서 높은 공경을 받는다.
     
     
    
    성 헬메네질도는 스페인의 비시고트 왕 레오비질도(Leovigildus)의 황대자로서 
    동생 레카레도(Reccaredus)와 함께 아리우스파 이단의 교육을 받았다. 
    부왕은 자기가 죽은 뒤 왕권을 타인의 손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아직 살아있으면서 
    나라를 둘로 나누어 남쪽 지방은 세레비아 시에 헤르메네질도를 왕으로 삼아 이를 다스리게 하고, 
    북쪽 지방은 레카레도에게 위탁해 이를 통치하도록 했다.
    
    이외 레오비질도 왕은 정략상 오스트라시아 즉 지금의 북쪽 프랑스의 국왕의 딸인 인군다를 맞아들여 
    헤르메네질도의 왕비로 삼았다. 인군다는 성 글로디르디스의 손녀로서 신앙심이 깊은 가톨릭 신자였지만 
    레오비질도 왕은 이를 자기 한족이 믿는 아리우스파 이단에 쉽게 개종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녀의 교육을 자기의 후처인 고스빈다 황후에게 맡겼던 것이다.
    
    그런데 인군다는 놀랄 만큼 신앙이 굳건해 위협하건 달래건 조금도 동요 되는 빛이 없었다.
    그리고 고스빈다가 나중에는 갖은 학대로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녀는 끝끝내 잘 참아내었다.
    남편 헤르메네질도는 지금까지 이단을 믿음으로써 가톨릭을 악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자기 아내의 고결한 태도를 보고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마음에 감화를 받아 가톨릭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때에 인군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즉시 남편을 레안데르 대주교에게 안내해 이를 소개해 주어 헤르메네질도는 비로소 진리의 빛을 
    보아 후에 아리우스파의 오류를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왕 레오비질도는 이 사실을 듣고 대노하여 레카fp도의 군대와 합세해 헤르메네질도의 성을 공격했다.
    그래서 헤르메네질도 역시 마지못해 군대로 하여금 방비케 했으나 결국 참패를 당해 충실한 잔병(殘兵) 
    3백명에게 보호되어 오쎄도로 피신했다. 그러나 적군은 곧 그 마을에까지 침입했으므로, 그는 최후의 각오를 하고 
    그 곳의 성당에 들어가서 기도를 바치고 있던 중 동생 레카레도가 와서 매우 측은히 생각하며 말하기를, 
    항복하고 간절히 아버지께 죄의 용서를 청한다면 자기도 할 수 있는 한 좋게 주선해 주겠다고 했다.
    헤르메네질도는 동생의 호의를 기뻐하며 즉시 그대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항복을 하자마자 비참하게도 즉시 왕위를 빼앗기고 또한 쇠사슬에 결박되어 
    세리비아 시에 압송되고 그 후 돌탑의 지하실에 감금되었다.
    
    그래도 그는 조금도 아버지나 동생을 원망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이 같은 처지에 이른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주님을 위해 
    고통을 당하고 덕을 세울 기회를 주신 것을 무한히 즐거워했다.
    그러한 심경이었으므로 자주 레오비질도가 사람을 파견해 
    “가톨릭을 버려라. 그렇게 하면 다시 세리비오의 왕으로 삼아주마”하고 권했지만 그것을 들을 리 만무했다.
    헤르메네질도는 언제든지 “아버지의 말씀은 매우 감사합니다만 교회를 버릴 수 없으며 왕위나 생명은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586년 4월 13일 성 목요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리우스파의 주교가 성체를 모시고 그의 감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 성체를 나의 손에서 받아 모시기만 하면 그것으로 가톨릭을 배반하는 줄로 간주하고 
    용서해 주신다는 부왕의 부탁입니다”하고 말했다. 그런데 헤르메네질도는 이를 듣고 나자 분격하며 
    정색을 하고 나서 “그대는 이단을 받드는 몸으로서 성체를 축성하고 독성의 대죄를 범했다. 
    그러한 자의 손에 성체를 받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노릇이다”
    하며 단연 거절했으므로 레오비질도는 분노해 형리들을 보내어 마침내 도끼로 머리를 치고 말았다.
    
    전설에 의하면 그때 헤르메네질도의 유해의 주위에는 이상한 광채가 보이고 또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고 하는데, 하여튼 그 뒤 국민의 그에 대한 존경은 대단한 것으로서 마치 성인처럼 
    그를 존경했으므로 아버지 레오비질도 왕도 마음이 편치 못해 드디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통회하고 
    임종시에는 교회의 대주교 레안데르를 병석에 초대해 아들 레카레도를 개종시키도록 부탁했다.
    그리하여 레카레도도 후에는 형과 같이 가톨릭 신자가 되어 교회를 위해 대단히 노력했으므로
    마침내 전국민이 이단의 암흑 속에서 벗어나 교회의 광명으로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이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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