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1월 15일) 성 아놀드 얀센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4-30 (목) 12:43 ㆍ조회:353 ㆍ추천:0
오늘의 聖人(1월 15일) 성 아놀드 얀센
    성 아놀드 얀센(Arnold Jansen)  축일 1월 15일  
    신분 신부, 설립자, 활동연도 1837-1909년  
    
     같은이름-아르놀드   
        
    독일의 라인(Rhine) 강변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 고흐(Goch)에서 태어난 성 아놀드 얀센은 뮌스터(Munster)의 
    게스돈크(Gaesdonck)에서 공부한 후 1861년 8월 15일 뮌스터 교구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12년 동안 독일 북서부의 보홀트(Bocholt) 시에 있는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 무렵 비스마르크 재상에 의해 독일 전역에서 문화 투쟁이 벌어지자, 얀센 신부는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와 하느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이 온 세상에 퍼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1873년 교직을 떠난 뒤 본격적으로 선교사 양성을 위한 신학원을 설립하기로 결심했으나, 
    독일에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네덜란드의 슈타일(Steyl)로 가서 1875년 9월 8일 
    '성 미카엘 선교 신학교'(St. Michael's Mission Seminary)를 설립하였다.  이 신학교는 세계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Societas Verbi Divini, 신언회)의 모태가 되었다. 말씀의 선교 수도회는 
    세계 선교를 활발히 펼치던 1901년 1월 25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을 받았다. 
    
    한편 성 얀센 신부는 1889년 12월 8일 '성령 선교 수녀회'(Congregatio Missionalis Servarum Spiritus Sancti)를 
    설립하여 말씀의 선교 수도회와 협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896년 12월 8일 기도로 선교에 참여하는 
    관상 수녀회인 '성체조배의 성령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성 얀센 신부는 1909년 1월 15일 슈타일의 수도원에서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 첫 선교사였던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Joseph Freinademetz, 1월 28일) 신부와 
    함께 1975년 1월 1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복자품에 올랐고, 2003년 10월 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아놀드 얀센(St. Arnold Janssen) 생애
    
    성 아놀드 얀센(St. Arnold Janssen)은 1837년 11월 5일 라인(Rhine)강변에 위치한 작은 도시 고흐(Goch)에서 
    10남매중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1861년 8월 15일 사제서품을 받은 아놀드 얀센은 보홀트(Bocholt)에 있는 
    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9000여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던 큰 도시 보홀트에서 생활하는 동안 
    교회의 영성적인 발전과 특히 해외 선교에 투신하고픈 열망을 키워가고 있었다.
    
    아놀드 얀센은 선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기 위한 종교 잡지를 출간하려는 생각을 구체화 하기 시작했으며 
    주교로부터 교사직의 사임을 승인 받은 1874년 1월 해외 선교에 대한 자신의 영감을 담은 선교잡지 
    '예수 성심의 작은 사자'(Little Messenger of the Sacred Heart)를 발간했다. '예수 성심의 작은 사자'는 예수 성심을 
    향한 열망을 전하는 전달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었던 복음 전파에 투신할 선교성소를 가진 이들의 마음을 
    깨우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아놀드 얀센은 이 잡지를 통해 대중들의 선교 의식을 고취시켜 선교 신학교 건립에 
    대한 생각을 불러 일으키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장차 슈타일의 선교 신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초석이 되었다. 
    당시 독일은 비스마르크의 문화혁명의 영향으로 독일 내에 선교 신학교 설립이 금지되어 아놀드 얀센은 
    독일 국경 너머의 이웃나라인 네덜란드로 시선을 돌렸다.
    
    얀센의 의지는 여러 사람들의 지지와 후원을 얻어 1875년 9월8일 네덜란드 슈타일(Style)에 선교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선교 신학교를 시작한 아놀드 얀센은 곧이어 인쇄소를 시작했다. 출판사업은 신학교와 해외 선교사는 물론 
    일반 대중들과도 긴밀한 협력을 이루어 효과적인 선교를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여긴 
    아놀드 얀센의 거시적인 안목이었다. 그 안목은 현재 아놀드 얀센의 후손들에게 이어져 현대적인 대중 통신 매체들의 
    눈부신 성과 안에서 매스미디어와 출판사도직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게 했다.
    
    4년 후 요한 밥티스트 신부와 요셉 프라이나데메츠 신부를 첫 선교사로 중국 산뚱 지역에 파견하였다. 
    온갖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선교 신학교와 출판사는 날로 번창했으며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여성들도 있었다. 아놀드 얀센은 선교에 있어 여성의 역할의 중요성을 봤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가지며 하느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라면 적절한 사람들을 보내주실 거라 확신했다.
    
    마침내 1889년 12월 8일 성령선교 수녀회(SSpS)를 창설했다. 기도를 통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 
    노력하며 살았던 아놀드 얀센은 1896년 12월 8일 기도로 선교에 참여하는 관상 수녀회 "성체조배의 성령선교 수녀회"를 
    창설했다. 이렇게 하여 아놀드 얀센의 선교 가족이 탄생하였다. 아놀드 얀센은 생전에 다섯 개의 석뇨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후 128년이 지난 그의 후손들이 전세계 100여개의 양성의 집에서 선교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2003년현재 세계 65개국에서 6,000여명의 말씀의 선교 수도회(SVD) 선교사들과 3,500여명의 성령선교 수녀(SSpS)들, 
    400여명의 성체조배의 성령선교수녀들이 아놀드 얀센의 사명을 이어가고 있다.
    
    3년간 SVD선교 가족의 아버지였으며 삶으로 표현된 모범이요 위대한 스승이었던 아놀드 얀센은 1909년 1월 15일 
    슈타일 모원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1975년 1월 15일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는 
    SVD의 첫 선교사 요셉 프라이나데메츠와 함께 복자품에 올렸다. 
    그리고 2003년 10월 5일 로마 바티칸에서 시성식을 통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르몽드 교국의 주교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면서 이 열악한 상황에서 선교 신학교를 살립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그는 바보 이거나 아니면 성인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입을 빌어 아놀드 얀센은 
    이미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성인이었음을 세상에 알리셨던 것이다.(말씀의 선교 수도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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