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19일) 성 레오 9세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8:19 ㆍ조회:351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19일) 성 레오 9세  
    
    
    
    성 레오 9세(Leo IX) 축일 4월 19일  
    신분 교황, 활동연도 1002-1054년  
    
    
    
    오늘날의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 에기스하임(Egisheim) 태생인 성 레오 9세는 
    황제의 측근인 후고(Hugo) 백작 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아 독일어권에서 살았지만 
    프랑스어에도 능통하였다. 브루노(Bruno)라는 속명으로 불린 그는 툴(Toul)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이미 학교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런데 소년 시절에 뱀에 물려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환시를 보고 기적적으로 치유된 경험이 그의 일생을 사로잡았다. 
    
    1027년 9월 9일 툴(Toul)의 주교로 착좌한 그는 성직자들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부터 착수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048년 8월 9일 교황 다마수스 2세(Damasus II)가 사망했을 때, 
    그가 후계자로 선출되어 이듬해 2월 12일 레오 9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올랐다. 
    그는 교회의 고질병이던 성직매매를 금지하기 위하여 로마(Roma) 교회회의를 개최하였고, 
    특히 사제 독신제를 강화시켰다. 또 그는 남부 이탈리아 지역에 대한 세속권을 받음으로써 
    교황령을 크게 확장시켰으나 잡음은 그치지 않았다. 1087년 교황 복자 빅토르 3세(Victor III, 9월 16일)는 
    그의 시신을 발굴하여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하였다
    
    
    
    교황 성 레오 9세(Pope St. Leo IX, 4월 19일)
    부패한 교회 개혁 운동 앞장
    1002~1054(교황 재위 1049~1054). 독일 출생 및 이탈리아 선종
    
    교황 성 레오 9세는 알자스지방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고, 
    교황이 되기 전 이름은 브루노였습니다.
    성인은 어렸을 적 뱀에 물려 사경을 헤맸다고 합니다. 
    이때 그 앞에 베네딕토 성인이 나타나 상처에 십자가를 대고 기도해 준 환시를 체험합니다. 
    이후 상처는 씻은 듯이 나았고, 이 체험은 성인을 성직자의 길로 이끄는 계기가 됐습니다.
    
    성인은 지역 주교들에게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성인은 15살에 지역 성당 참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성인 친척이 황제가 되자 성인은 궁전에 있는 성당에서 일하게 됩니다. 
    지식과 덕을 겸비한 성인은 궁 안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25살에 툴지역 주교가 된 성인은 개혁가로서 명성을 떨칩니다. 
    그는 부패한 교회에 자성을 촉구한 수도원 개혁 운동에 영향을 받아 교회 개혁에 앞장섭니다. 
    성직자들의 과도한 재산 축적과 성직 매매 근절에 적극 나섰고, 
    사제 독신제를 강조하며 사제 윤리 강령을 재정비했습니다.
     이같은 개혁 의지는 교황이 된 후에도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열성적으로 교회 개혁에 나섰습니다.
     
    그는 독일, 프랑스, 헝가리 등 유럽 전역을 방문해 지역 공의회를 열고 성직자들 기강을 
    바로잡는 데 헌신했습니다. 부도덕한 성직자들을 파문시키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또 교황 수위권을 강조하며, 황제에게서 교황권을 독립시키려 노력했습니다.
     
    교황은 재위 말기에 군대를 일으켜 교황령을 침범하는 노르만족 침입에 맞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이에 실패해 1053년 포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가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교황과 대립하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라틴 전례를 사용하는 성당과 수도원을 탄압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결국 동ㆍ서교회 분열이라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1054년 감옥에서 나와 로마로 돌아온 성인은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선종했습니다. 
    성인 유해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치됐고, 이후 성인 전구로 수많은 치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평화신문, 2012년 4월 15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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