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17일) 성녀 카테리 테카크위타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1:57 ㆍ조회:370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17일) 성녀 카테리 테카크위타  
    
    
    
    성녀 카테리 테카크위타(Kateri Tekakwitha) 축일 4월 17일  
    신분 과부, 활동지역 캐나다(Canada) 활동연도 1656-1680년
    
     같은이름-가타리나, 까따리나, 까떼리, 데카퀴타, 데카크위사, 카데리, 카타리나, 캐서린  
    
    캐나다 이로쿼이(Iroquois) 인디언들에게 체포된 알곤퀸(Algonquian)의 딸인 성녀 카테리 테카크위타는 
    현재의 뉴욕(New York) 오리스빌(Auriesville) 근처의 모호크(Mohawk)에서 태어나 모호크족의 인디언 추장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1676년에 예수회 선교사인 쟈크 드 랑버빌(Jacques de Lamberville) 신부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나, 그녀의 신앙을 반대하는 부족과 친척들의 질시와 학대를 이기지 못하여 
    고향을 떠났다. 밀림 지대를 거쳐 200마일의 거리를 헤맨 끝에 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과 가까운 
    어느 그리스도교 인디언 마을에 당도하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1677년 성탄절에 첫영성체를 하였고, 
    1679년에는 동정서원을 발하고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한 후 선행과 사랑의 실천에 몰두하였다.
    
    그녀는 캐나다의 코프나와가(Caughnawaga)에서 선종하였는데, 
    그녀의 성덕이 뛰어나 만인의 공경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녀는 ‘모호크의 백합’으로 불리며, 
    1980년 6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아메리카 본토인 가운데 최초로 시복되었다. 
    2011년 12월 19일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가 기적을 확인하는 시성성의 교령을 승인한 후 
    그녀에 대한 시성 절차가 진행되어, 2012년 10월 21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녀 카타리나 테카크위타(Catharina Tekakwitha)로도 불리는 
    그녀의 축일은 캐나다에서는 본래대로 4월 17일에 기념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부활 대축일과 겹치는 
    불편 때문에 7월 14일로 이동하여 기념하고 있다.
    
    
    
    가톨릭 聖人 된 330년 前 인디언 여성
    평생 가톨릭 전하다 숨질 때 병자들 치유되는 기적 일어나 교황청, 새 성인으로 추대
    
    '가톨릭 교회의 포카혼타스'.
    최근 외신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는 최초로 성인(聖人)으로 추대된 인디언 여성에게 이런 별칭을 붙였다.
    카데리 데카퀴타(Kateri Tekakwitha)는 1656년 미국과 캐나다 접경 지역인 
    오세르네논(Osserne non·현재의 뉴욕주 오리스빌)에서 인디언 부족인 모호크(Mohawks)족 추장의 딸로 태어났다. 
    이웃 부족 알곤퀸(Algonquin) 출신인 어머니는 이미 프랑스 예수회 수사(修士)의 영향을 받은 가톨릭 신자였다.
    
    네 살 되던 해, 모호크족에 천연두가 돌았다. 역병을 앓은 카데리는 얼굴에 심한 흉터가 생겼고, 
    시력을 거의 잃게 됐다. 게다가 그 전염병으로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었다. 이웃 부족 추장에게 
    양녀로 입양된 카데리는 가톨릭에 의지했다. 그는 어머니가 남긴 묵주를 꼭 지니고 다녔다. 
    하지만 당시 인디언 부족 사이에서 서양 종교는 금기였다. 양아버지에게 묵주를 빼앗기고, 
    부족민한테 갖은 박해를 당해야 했다.
    
    카데리는 고행을 통해 박해를 이겨 나갔다. 침대에 가시를 올려놓고 기도를 올렸으며, 
    병든 노약자를 헌신적으로 돌봤다. 그런 틈틈이 부족 아이들에게 성가(聖歌)를 가르치고, 
    가톨릭을 인디언 사회에 전파했다. 그럴수록 그에 대한 박해는 심해졌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그는 1679년 인디언 가톨릭 교인이 모여 살던 퀘벡주로 이주했다. 
    그는 프랑스 이름 카트린(Catherine)을 인디언 식으로 발음한 카데리를 자기 이름으로 택했다. 
    그의 인디언 이름인 '데카퀴타'는 '정리 정돈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곳에서 봉사와 고행으로 시간을 보내던 카데리는 이듬해 168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기적은 카데리가 숨을 거둘 때 일어났다. 한평생 그를 따라다녔던 얼굴 흉터가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병자들도 치유됐다. 그의 기적은 330년 후에 다시 재현됐다. 
    2006년 한 수녀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섯 살짜리 인디언 소년 몸에 카데리의 손목 뼛조각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 소년의 병이 완치된 것이다.
    
    198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 시복(諡福·성인 추대 전 단계)됐던 카데리는 지난 19일(현지 시각) 
    교황청에 의해 인디언 최초로 성인으로 추대됐다. 교황청은 카데리를 포함해 1880년대 말 
    하와이의 나병 환자촌에서 봉사 활동을 한 마리안느 수녀 등 모두 7명을 새로 성인으로 추대했다.
     [조선일보, 2011년 12월 22일, 파리=이성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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