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6일) 성녀 율리아나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3 (일) 21:12 ㆍ조회:861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6일) 성녀 율리아나  
    
    
     
    성녀 율리아나(Juliana) 축일 4월 6일  
    신분 신비가, 수녀, 활동지역 코르닐롱산(Mount Cornillon) 활동연도 1192-1258년   
    
     같은이름-율리안나, 줄리아나, 쥴리아나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지방 리에주(Liege) 교외 러틴느(Retinnes)에서 태어난 성녀 율리아나는 
    5세 때에 고아가 되어 코르닐롱 산의 수녀들의 도움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환시를 경험하였는데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성체를 공경하는 축일이 없다고 지적하셨다. 
    그 후 그녀는 수녀가 되었고, 1225년에는 원장으로 선출되면서부터 자신의 환시 내용을 기초로 
    축일을 만들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저런 오해도 많았고 제재를 당하기도 했지만 
    마침내 리에주의 주교가 1246년 교구 내에 '주님의 성체 축일'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그 주교가 사망하면서부터 그녀를 반대하는 기운이 일어나 성녀 율리아나는 자기 수녀원에서 쫓겨났다. 
    그 후 나무르(Namur)의 시토회 수도원에 피난처를 마련하였으나 그곳마저 헨리 2세의 군인들이 파괴하였다. 
    그녀는 일생 동안 성체 축일 제정과 성체 축일의 보급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258년 4월 5일 포세스(Fosses)에서 선종하였다. 
    그녀의 사후 교황 우르바누스 4세(Urbanus IV)는 1264년 라틴 전례의 모든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을 
    지낼 것을 선포하였다. 교황 비오 9세(Pius IX)는 1869년에 그녀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였다. 
    리에주의 성녀 율리아나로도 불리는 그녀의 축일은 4월 5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성녀 율리아나(St. Juliana, 4월 6일)
    성체 신심 전파에 앞장, 기도 중 성체 환시 경험하고 성체 축일 제정에 힘써
    1193~1258. 벨기에 출생 및 선종. 동정녀
     
    성녀는 5살 때 부모님을 모두 잃고 고아가 됐습니다. 
    성녀가 살던 집 근처에 있던 수녀원 수녀님들은 성녀를 수녀원으로 데려와 돌봤습니다.
     때문에 성녀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기도와 봉헌생활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또 수녀님들을 따라 봉사활동을 거들며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성녀는 유난히 성체 신심이 깊었는데, 10대 때부터 기도 중에 성체 환시를 경험했습니다. 
    또 성녀에게 나타난 주님은 전례축일 가운데 성체를 공경하고 현양하는 축일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시며 
    성녀에게 성체를 기념하는 날을 만들 것을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성녀는 이같은 환시를 고해 신부님께 고백하면서, 
    주님 뜻에 따라 성체축일 제정에 힘써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고해 신부님은 이 사실을 신학자와 주교님들과 함께 고민합니다.
     
    성녀가 활동하던 리에주교구 교구장은 고민 끝에 이를 받아들여 1246년 교구에서 성체 축일을 
    기념하는 전례행사를 갖습니다. 또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성녀와 같이 성체 환시를 체험한 뒤, 
    1264년 그리스도 성체 축일을 온 교회가 지낼 것을 선포합니다. 
    이 축일이 바로 지금의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성녀는 성체 축일 제정에 노력하면서도 수녀원장으로서 성소자 양성에 힘쓰고 
    지역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성녀의 사도직활동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시 성녀가 살던 지역은 교황파와 황제파로 
    나뉘어 정치적 갈등이 심했고, 성직자와 수도자들 활동을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돈으로 성직을 매수한 한 본당 신부는 성녀를 모함해 급기야 성녀를 수녀원장 자리에서 쫓아냈습니다.
     
    성녀는 다른 지역으로 피신해 있으면서도 모든 상황을 기도로 용서하고 참아냈습니다. 
    성녀는 이후 성체 신심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다 선종했습니다. 교황 비오 9세는 1869년 성녀를 시성했습니다.
    [평화신문, 2012년 4월 1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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