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4월 29일) 성 베드로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8:56 ㆍ조회:1238 ㆍ추천:0

오늘의 聖人(4월 29일) 성 베드로  
    
    
    
    성 베드로(Peter) 축일 4월 29일  
    신분 수사, 순교자, 활동지역 베로나(Verona) 활동연도 1206-1252년  
     
     같은이름-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태어난 성 베드로(Petrus)는 당시 성행하던 카타리 이단에 빠진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카타리 이단은 세상의 물질이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되었음을 부인하는 주장을 강조하고 다녔다. 
    그런데 가톨릭 학교를 다니게 된 성 베드로는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에 나오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에 대한 의문을 늘 갖고 있었다. 볼로냐 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비로소 모든 의심을 
    제거하고 도미니코회의 회원이 되었다. 이때 성 도미니코(Dominicus, 8월 8일)가 그를 직접 받아들였다. 
    
    그 후 그는 롬바르디아(Lombardia) 전역을 누비며 뛰어난 설교가로 변신하였다. 
    123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는 그를 밀라노(Milano) 지역의 총심문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이 임무를 성실히 수행함과 더불어 볼로냐(Bologna), 크레모나(Cremona), 라벤나(Ravenna), 
    제노바(Genova), 베네치아(Venezia) 그리고 안코나(Ancona)의 마르카 지역까지 두루 다니며 
    설교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주 순교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는데, 
    과연 그는 자신의 설교에 반감을 품은 어느 살인자에 의해 순교하였다. 
    이때 흘린 그의 피는 "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라는 글을 썼다고 한다. 그는 4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그는 순교한 바로 다음 해인 1253년 3월 25일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Innocentius IV)에 의해 시성되었다.
    
    
    
    베로나의 성 베드로 순교자(S. PETRUS DE VERONA)의 생애와 사상
    
    우리 성교회는 어떤 때에는 외부로부터 받는 박해로 고생하고 어떤 때에는 내부에서 생기는 이단으로 
    고생을 당하여왔다. 여기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성인은 우리 수도회의 한 별이기도 하며, 
    가톨릭을 이단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었던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한 큰 성인 중의 한 사람이다. 
    이제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는 교훈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시대적 배경 
    
    이미 2세기 초대 교회 때에 일어난 위험한 그노시스파의 이단은 4세기에 이르러 멸망되었지만 12세기에 
    다시 면모를 새롭게 하여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 나타나 이에 속하는 자를 정결한 자라고 자칭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이름에 반(反)하여 도리어 정결치 못한 생활을 행하였으므로 성교회에서는 
    교황의 명을 받들어 종교 재판소 제도를 만들어, 주교의 권한에 속하는 이단의 조사를 위해 수도자들로 
    구성되는 특별한 자문기관을 설치하여 이를 위탁하고 이단의 전멸에 힘썼다. 
    이 종교 재판소의 조사위원으로 선출된 이는 학문과 덕행에 뛰어난 수사나 사제이어야만 했는데, 
    특히 도미니꼬회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언급하고자 하는 성 베드로도 이러한 위원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2. 생애 
    
    성 베드로는 1205년경 이탈리아의 밀라노 근처에서 출생하였다. 부모는 이단을 신봉하고 있었지만 
    그는 다행히도 어려서부터 가톨릭의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이단에 물들지 않았고 특히 15세때 
    볼로냐의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는 성 도미니꼬를 만나 그 위대한 인격에 감동되고 결국 그가 창립한 
    수도원에 들어갈 것을 결심하여 도미니꼬 자신의 손으로부터 수도복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대학에 있으면서 열심으로 학문에 몰두하는 한편 기도는 물론 고행도 
    과도히 행한 결과 졸업 후 건강을 잃어 중병에 걸렸으나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건강을 회복하고 
    이번에는 베로나라는 읍에 가서 성교회를 위하여 활약을 개시하였다.
    
    그의 생애의 기록은, 그의 죽음보다도 더욱 놀랍다. 이단자였던 부모에게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에 지극히 해로운 이론과 관습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기적적이라고 할만한 
    신앙과 도덕의 순수함을 간직했다. 친척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장황한 말들을 들으면서도, 
    그는 몸과 영혼 모두 변함이 없었다. 15세에 볼로냐 대학에 보내진 그는 성 도미니꼬를 만났으며, 
    자신이 버리려고 하고 있었던 부와 권력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성인의 발앞에 엎드려 
    자신을 수도회에 받아줄 것을 간청했다. 
    그는 성 도미니꼬의 임종을 보았으며, 성인의 아들들에게 물려졌던 그 첫 열정과 용기를 함께 받았다
    
    3. 사상 
    
    그가 고요한 수도원에서 연마해온 기도, 고행, 묵상, 연학의 결과는 공공연하게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즉 그의 심오한 설교는 가톨릭 신자들을 먼 지방에서까지 끌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이단자들까지도  
    감동시켜 수많은 개종자를 나게 하였던 것이다. 그 외에 다년간이나 원수처럼 미워하며 싸워오던 사람들도 
    그의 온순한 권면의 말씀을 듣고서는 쾌히 화목하고, 비인간적인 고리대금을 하던 자도 그의 훈계의 
    말씀을 듣고서는 부정한 이익을 돌려주기도 하고 혹은 불쌍한 채무자의 부채를 면제해 주기도 하였다.
    
    그는 아직도 학생이었던 때에 어려운 시험을 겪었다. 늦은 밤에 베드로의 방을 지나갔던 한 형제가 
    그의 방에서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던 바람에, 그는 사람들 앞에서 비난과 벌을 받았다. 
    그 목소리는, 성인을 자주 방문했던 천사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겸손했던 그는 벌을 받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여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참회를 하도록 다른 수도원으로 보내졌고, 
    그의 서품은 연기되었다. 베드로는 기도했으며, 기도 중에 큰 힘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으로서 예민하게 모욕을 느꼈고, 어느날은 하느님께 불평을 했다.
    "주님, 당신은 제가 결백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당신은 왜 그들에게, 이것이 제 잘못이라고 믿게 하십니까?" 
    십자고상에서, 슬픈 목소리의 응답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베드로야, 나는 그들이 나에게 이렇게 하도록 무엇을 했느냐?" 
    베드로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결국 진실은 밝혀졌고, 공동체에 돌아간 베드로는 공부를 다시 계속했다. 
    그는 순교자의 죽음을 맞을 수 있는 행복을 얻도록 매일 기도했다.
    
    베드로는 곧 설교자로 유명해졌고 이탈리아 북부 전 지역에서 이단자들과의 논쟁을 맡았다. 
    그의 기도를 통하여 많은 기적들이 이루어져, 이단자들을 격분케했다. 어느 도시에서 한 유명한 사람이 
    이단에 빠진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악마가 성모님의 모습으로 이단자들의 모임에 나타나 그들에게 
    가담하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를 진리에로 되찾아 오기로 결심한 베드로는, 악마가 가장을 하고 
    나타나 있던 그들의 모임에 가서, 축성된 성체를 담은 후 작은 성합을 들어 올렸다. 
    베드로는 "네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면, 네 아들에게 경배를 드려라!" 라고 외쳤다. 악마는 당황하여 달아났고, 
    많은 이단자들은 회개했다. 베드로의 성공에 놀란 적들은, 그를 무너뜨릴 계획을 세웠다.
    
    4. 순교 
    
    성교회에 대한 그의 공로가 이렇게 증가되는 것만큼, 그에 대한 원수의 증오도 점점 커갔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베드로가 그들의 구령을 위하여 특별한 고행이나 희생을 바치고 있는 막대한 사랑도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그를 죽이려는 무서운 계획까지 세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1252년 부활축일 다음 토요일의 일이었다. 베드로가 고모에서 밀라노로 통하는 길을 성무일도를 보면서 
    예사로 걷고 있노라니까 뜻밖에 어디선가 뛰어나와 그에게 달려드는 5, 6명의 폭도가 있었다. 
    어느덧 베드로의 머리는 도끼로 쩍혀졌고 가슴은 단도로 찔리어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각오하고 있던 성인은 조금도 동요하는 빛이 없이 
    혹독한 고통 중에서도 사도신경을 외우고 소리낼 힘도 없어지자 손가락에 피를 적셔 땅위에 
    (나는 믿는다) 라고 써 가면서 치명하게 되었다.
    
    당시의 이단자들은 그를 살해하고 큰 장애물을 없앤 것처럼 기뻐하며 다시 자기네 교회가 발전될 것을 
    은근히 바라고 있었으나 그 기대는 완전히 어그러져 오래지 않아 그 이단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그 전멸에는 반드시 저 베드로의 귀중한 생명의 희생이 큰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죽음의 길을 갔는데, 이것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도미니칸의 전통적인 방법이라, 
    이단자들의 위협에도 꺾이지 않고 그는 부활절의 부속가를 부르면서 걸어갔고, 암살자들의 습격에 
    저항없이 쓰러졌다. 성인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한 살인자는 회개하여 결국은 도미니칸의 수도복을 받았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복된" 카리노라고 불린다. 베드로는 카리노와 우리에게, 
    그가 자신의 피로 길의 먼지 속에 써 놓은 그 글을, 천국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준다. 
    그것은 그의 길을 비추었던,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라는 신앙고백이었던 것이다.
    
    5. 수도회와 성교회에 미친 영향 
    
    그의 빛나는 업적을 보고 이같은 사람이야말로 이단을 전멸하는데 둘도 없는 투사라고 믿게 된 
    교황은 그를 북이탈리아의 종교 재판소 심문 조사 위원으로 임명하였다. 
    베드로는 과연 이 교황의 신임을 배반치 않고 그러한 어려운 직분에 있기를 전후 20년, 
    그동안 개종시킨 이단자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 그가 온화하고 친절하게 
    열정을 기울여 도리를 분별하고 올바른 교훈을 베풀때 거기에 대항하는 자는 거의 없었다.
    
    베로나의 성 베드로 순교자는 진리를 위하여 죽은 첫 도미니칸은 아니지만, 성덕으로 너무나 존경을 받았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에 시성되었다. 그는 두려움을 모르는, 수도회의 사도의 전형이 되었던 것이다.
    [도미니코 수도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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