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聖人(5월 7일) 성녀 로사 베네리니
ㆍ작성자:사이버사목 ㆍ작성일:2015-05-04 (월) 09:23 ㆍ조회:823 ㆍ추천:0
2015/4/18(토)
오늘의 聖人(5월 7일) 성녀 로사 베네리니  
    
    
    
    성녀 로사 베네리니(Rosa Venerini) 축일 5월 7일  
    신분 동정녀, 설립자, 활동연도 1656-1728년   
     
     같은이름-로싸, 로즈  
    
    
    
    성녀 로사 베네리니(Rosa Venerini)는 1656년 2월 9일 이탈리아의 비테르보(Viterbo)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인 고프레도(Goffredo)는 안코나(Ancona)의 카스텔레오네 디 수아사(Castelleone di Suasa) 
    출신으로 로마(Roma)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비테르보의 대형 병원에서 의사 직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비테르보의 오래된 가문 출신인 마르지아 잠피체티(Marzia Zampichetti)와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 즉 도메니코(Domenico),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ddalena), 로사 베네리니, 
    오라지오(Orazio)를 두었다.
    
    로사 베네리니는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함과 비범한 감성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가정교육을 통해 
    확고한 그리스도교적 원칙 안에서 형성된 많은 심리적인 재능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녀의 첫 번째 전기 작가인 지롤라모 안드레우치(Girolamo Andreucci) 신부에 의하면 그녀는 7살 때 
    이미 자신의 삶을 봉헌하기 위한 서원을 했다고 한다. 청소년기 동안 그녀는 세상의 매력과 
    하느님께 드린 약속 사이에서 고민하며 지냈는데, 이 위기를 의심 없는 기도와 금욕으로써 이겨냈다. 
    20살 때 로사 베네리니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녀가 살던 시대에 여성들의 삶은 
    결혼 아니면 수도생활이라는 두 가지 방향의 선택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그녀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존중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교회의 유익과 당시 사회를 위해 다른 계획을 깨닫도록 그녀를 부르셨다. 
    이러한 예언적인 내적 움직임에 의해 그녀는 완전히 혁신적인 해결책에 도달할 때까지 
    고통과 탐색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676년 가을, 그녀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서원을 완성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의 도미니코회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그녀의 이모인 체칠리아(Anna Cecilia) 
    옆에서 그녀는 침묵과 묵상 중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녀의 수도원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입회 몇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가족에게 주어진 불행의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그녀의 오빠인 도메니코가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그로부터 몇 달 뒤에 
    어머니 또한 세상을 떠나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는 중에 언니 마리아 막달레나는 결혼을 했고, 
    집에는 이제 막내 오라지오와 24살이 된 로사 베네리니만이 남게 되었다.
    
    하느님을 위해 뭔가 큰일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1684년 5월에 주변의 처녀와 부인들을 모아 저녁마다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그들과 기도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기도 전후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슬픈 현실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당시 여성들은 문화적 · 교육적 · 영성적 가난의 노예와도 같았다. 
    로사 베네리니는 하느님께서 젊은 여성들의 교육과 그리스도교적 양성이라는 보다 높은 사명을 위해 
    자신을 부르고 계심을 이해했고, 산발적인 만남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현실적이고 참된 감각을 갖고 
    투신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1685년 8월 30일 아버지의 집을 떠난 로사 베네리니는 
    비테르보의 주교인 우르바노 사케티(Urbano Sacchetti) 추기경의 승인을 받고, 두 명의 친구이자 협력자인 
    제롤라마 콜루첼리(Gerolama Coluzzelli)와 포르지아 바키(Porzia Bacci)와 함께 혁신적인 계획을 따라 
    기도 안에서 성숙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는 첫 번째 여학교를 시작하였다.
    
    설립자로서 로사 베네리니의 첫 번째 목적은 소녀들을 그리스도교적 정신으로 양성하고 사회생활을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거창한 주장은 없었지만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소녀들을 위한 
    공립학교를 개교한 것이었다. 비록 시작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만큼은 예언적이라 할만 했다. 
    여성들의 인간적 증진과 영성적 향상이 현실화되었고, 교회와 시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첫 시작이 쉽지는 않았다. 자신의 직무로서 교리교육을 담당하는 
    성직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고, 무지한 소녀들의 교육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비테르보의 중상류 계층 
    여성들의 대담함에 충격을 느낀 순응주의자들로부터 호된 의혹을 사기도 했다. 
    로사 베네리니는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이 모든 것을 극복하며 자신이 하느님의 계획을 올바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질 때까지 주어진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옳았다는 것은 
    교육사업의 결과로써 입증되었다.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목자들로부터 그녀의 교육방법이 가져온 
    교육적 개선을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창시한 혁신적 교육방법의 타당성이 인정받으면서 그녀의 명성은 교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비테르보 프로젝트의 특징을 잘 이해한 몬테피아스코네(Montefiascone) 교구의 
    마르코 안토니오 바르바리고(Marco Antonio Barbarigo) 추기경은 로사 베네리니를 자신의 교구로 초대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항상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던 그녀는 이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였다. 
    그래서 1692년부터 1694년까지 몬테피아스코네와 볼세나(Bolsena) 호수 주변 마을에 
    열 개의 학교를 개교하였는데, 바르바리고 추기경은 적극적인 물질적 후원을 제공하였다. 
    한편 교사들의 훈련과 학교들을 조직할 기구의 필요성을 느낀 로사 베네리니는 추기경의 도움으로 
    교사 훈련원을 세웠고, 이곳에서 비슷한 사명을 수행하던 성녀 루치아 필립피니(Lucia Filippini, 3월 25일)
    를 만나 그녀와 함께 ‘자비로운 교사회’를 공동으로 설립하였는데, 오늘날 베네리니의 자매회로 불린다.
    
    비테르보와 몬테피아스코네에 여학교를 개교한 로사 베네리니는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서부 라치오(Lazio) 지방에서 또 다른 학교들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706년에 로마로 진출했으나 한 동안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시 당국의 신뢰를 얻기까지 6년의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1713년 12월 8일 베네리니 가족의 
    위대한 친구인 아바테 데글리 아티(Abate Degli Atti)의 도움으로 로마의 중심지인 
    캄피도글리오(Campidoglio) 바로 아래에 학교를 개교할 수 있었다. 
    1716년 10월 24일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는 8명의 추기경을 동반하고 
    그녀가 설립한 학교를 시찰하기 위해 방문하여 “당신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행복을 가져다 줄 이 학교에 대해 너무도 고맙습니다.”라며 치하하였다. 이를 계기로 
    여러 지역의 당국자와 추기경들로부터 자신들의 지역에 학교를 세워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였다. 
    그녀는 힘겨운 여행을 계속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기쁨과 희생이 
    뒤섞인 고된 작업을 이어갔다. 그녀가 새로운 학교를 시작하는 곳 어디서든 짧은 기간 안에 
    젊은이들 안에서 높은 교육적 증진의 효과를 가져왔다.
    
    로사 베네리니는 1728년 5월 7일 오후 로마의 성 마르코 공동체에서 성인다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녀는 일생 동안 40개 이상의 학교를 개교하였다. 그녀의 유해는 평소 그녀가 사랑했던 
    제수(Gesu)의 성당 근처에 안장되었고, 시복식을 즈음하여 로마에 있는 관구 본부의 경당으로 이장하였다. 
    그녀는 1952년 5월 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6년 10월 1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로사 베네리니(St. Rosa Venerini, 5월 7일)
    
    여성 교육사업 선구자, 학교 설립해 가톨릭적 교육가치 전파
    1656~1728.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베네리니회 설립
    
    성녀 로사 베네리니는 독실한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께 배운 신앙은 성녀 삶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성녀는 어려서부터 수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스스로 규칙을 정해 기도와 금식을 하는 등 수도생활을 준비했습니다. 
    성녀는 20살이 되던 해에 수녀회에 입회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수도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입회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듬해에는 오빠와 어머니 장례를 잇달아 치러야 했습니다.
    
    가족을 돌보려고 수녀회를 나온 성녀는 슬픔과 상실감 속에서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성녀는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이웃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 마을 젊은 여성들과 
    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성녀는 여성들이 기도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고 
    가톨릭 교리 지식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성녀는 여성교육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내려준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힘을 모아 학교를 세웠습니다. 어린 여학생들을 가르치며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습니다.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나선다'고 숱한 반대에 부딪히며 교육을 시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성녀는 묵묵히 일을 진행했습니다.
     
    성녀는 하느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과 교만이 앞설까봐 늘 조심하며 겸손했습니다. 
    무엇보다 기도생활을 최우선으로 하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성녀는 늘 "저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고,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대로 
    봉사할 뿐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성녀의 선구자적 교육사업은 교회와 사회 안팎으로 크게 뻗어 나갔습니다. 
    성녀는 이탈리아 곳곳에 학교를 세워 가톨릭적 교육 가치를 전파했습니다.
    
    성녀는 1728년 선종했고, 교육사업을 위해 만든 베네리니회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성녀는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시성됐습니다.[평화신문, 2012년 5월 6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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