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Pieta) 안니발레 카라치
ㆍ작성자: ㆍ작성일:2015-05-04 (월) 19:21 ㆍ조회:901 ㆍ추천:0

피에타(Pieta) 안니발레 카라치
    피에타(Pietà)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1599-1600,156 x 149 cm, 캔버스에 오일 카폰디몬테 국립미술관,나폴리(Museo Nazionale di Capodimonte, Naples)
    Pietà with Sts Francis and Mary Magdalen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1602-07,Oil on canvas, 277 x 186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세폭 제단화( triptych)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1604-05, 구리와 패널, 37 x 24 cm (중앙 패널), 37 x 12 cm (각 날개)에 기름 국립 현대 미술관(Galleria Nazionale d'arte Moderna)로마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1560년 ~ 1609년 7월 15일) 안니발레 카라치는 미술가 가문인 카라치가(家)에서 가장 창의력이 풍부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화가였다. 카라치 가문은 16세기 후반부터 볼로냐에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안니발레는 화가를 직업으로 삼는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사촌 루도비코의 공방에서 형제인 아고스티노와 함께 미술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엄격한 이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정제된 자연주의 양식을 추구했으며 마니에리스모 양식의 영향을 제거하고자 했다. 카라치 가문은 이탈리아 미술의 발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안니발레의 초기 작품들은 마니에리스모 양식의 인위적인 기교에 비하면 놀랍도록 근대적이고 선구적이었다. <푸줏간>(1580~1590)을 좋은 예로 들 수 있는데, 그는 이 작품에서 느슨한 붓놀림으로 일꾼들이 동물의 시체들을 매다는 장면을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해냈다. 안니발레는 이처럼 진실과 사실에 전념했기에 종교화에서도 매우 솔직하고 명확한 양식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는 17세기 바로크 회화의 기초가 되는 특징인 감정적인 울림을 작품을 통해 전달했다. 안니발레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작품들, 그리고 고대 미술의 근원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연구하기 위해, 1595년 로마로 떠났다. 추기경 오도아르드는 안니발레에게 파르네세 궁전의 장식 작업을 의뢰했다. 그것은 궁전의 천장에다 '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하여 기념비적이고 고전적인 누드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안니발레는 약 10년간 이 작업을 했고, 완성된 작품은 '그랜드 매너' 양식의 화가들에게 좋은 표본이 되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신화적이었다. 안니발레는 의도적으로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같은 당시 로마의 다른 위대한 프레스코 천장화를 참고했다. 이 프레스코 역시 다른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형제인 아고스티노와 함께 제작한 것인데, 어느 부분을 누가 그렸는지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볼로냐의 마냐니 궁전에서 소벽의 일부분을 누가 그렸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카라치가가 그린 것이다. 우리 둘이 그린 것이다." 안니발레의 상상력은 그의 섬세한 드로잉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그가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예비적으로 그렸던 수백 점의 드로잉들은 각각 인체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표현주의적인 힘을 지닌 선, 그리고 뛰어난 도안 능력을 보여준다.(위대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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