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Pieta) 외젠 들라크루아, 반 고흐
ㆍ작성자: ㆍ작성일:2015-05-04 (월) 19:18 ㆍ조회:864 ㆍ추천:0

피에타(Pieta) 외젠 들라크루아, 반 고흐
    피에타(Pieta)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 프랑스) 18세기경 . 낭만주의,유화 ,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 29.5 x 42.5 cm , 루브르 박물관 피에타를 위한 습작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 프랑스) 19세기경,소묘. 흑필(crayon noir,) 28 x 20.5 cm 외젠 들라크루아 미술관 피에타(Pieta)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 프랑스) 피에타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 모작)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 ,네델란드) 1889, 유화, 캔버스에 유채 .60 x 73 cm ,반 고흐 미술관 바티칸에서 고흐 탄생 150주년 기념으로 발행한 우표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 있는 그 자체다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 세계 미술사의 지울 수 없는 거장, 활화산 같은 예술혼을 사르다 생을 마감한 화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값의 화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년)이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작된 그의 작품들(800점 이상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은 야생의 강렬한 색채와 강하고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이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이런 비사실적이면서 생동감 있는 형상들은 그를 자살로 몰고 간 정신병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고흐는 1889년 5월 초, 정신발작 증세로 생-레미의 사립 요양원에 수용되어다. 이 시절의 그는 평온하였으나, 그의 예술세계에서는 소용돌이치는 광기의 작품을 남긴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작품 가운데 하나가 ‘피에타’로 낭만주의의 거장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모사한 것이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병실에 걸린 들라크루아의 ‘피에타’ 흑백 인쇄화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그의 물감통에 빠져버렸다. 이 놀라움에 빠진 순간,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흐는 자신감과 확신, 열정을 느끼며 이 인쇄화를 단번에 그의 화폭에 재현한다. 그가 이런 자신의 행위를 ‘즉흥’ 또는 ‘해석’이라 한 까닭은 단순히 모방하여 그린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것을 뜻한다. 죽음과 고통의 시학 말이다. 무료하고 고독한 환경의 정신병원에서 평소 적의를 품고 있던 종교가 자신에게 위안을 준다는 사실을, 순간 느낀 것은 아닌가? 그러면 고흐가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 일순간 느낀 그 위안은 무엇일까? 들라크루아의 ‘피에타’에 보인 예수님의 얼굴과 근육에는 가혹한 죽음의 고통이 깊게 배어있다. 수난당하는 모습은 세속적 고통과 비교를 거부할 만큼 신성하고 숭고하게 보인다. 고독과 죽음의 고통에서 허덕이던 고흐에게 예수님이 보인 숭고한 죽음의 모습이 오히려 삶과 예술의 의지를 불태우게 한 것이다. 예수님의 그 고통을 자기의 고통과 동일하게 여기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은 아닐까? 그 동일시의 자국이 고흐의 ‘피에타’에 역력하다. 먼저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얼굴에는 수염을 기른 고흐 자신의 얼굴이 겹쳐있다. 그 얼굴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고난의 예수님이시며 동시에 정신병에 시달리며 극시한 고독에 빠진 고흐의 얼굴인 것이다. 그 얼굴은 삶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는 잿빛이며, 잿빛 위에 가해진 초록색은 죽음과 고통의 깊이를 훨씬 더해주고 있다. 정신병원 생활이 전부인 고흐의 이 시기 작품은, 현실과 격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고독에 싸인 슬픔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 고독과 자폐적 흥분에 따른 그의 상상력이 작품을 더 극적으로 몰고 가면서, 힘찬 선을 바탕으로 한 그림의 형태는 역동적인 반면 색은 좀 느긋해진 느낌을 준다. 단적으로 사랑하는 아들의 주검을 안고 있는 마리아의 거칠고 투박한 손이 삶의 고통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의 모질고 강한 근육이 삶의 희망과 의지를 보여주지만, 힘없이 늘어진 죽은 얼굴이 삶에 대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실제 현실의 고통을 한층 극적으로 나타내준다. 이런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과 고독은, 들라크루아가 그린 ‘피에타’에서 성모 마리아의 생동감 있는 붉은색이 고흐의 그림에서는 창백하고 싸늘한 청색으로 재현되었다는 점에서 한층 강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들라크루아의 예수님에 비해 고흐의 예수님한테서 보이는 깨끗한 노란색의 이미지는 이런 죽음의 강박 뒤에 감추인 고흐의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감지하게 한다. 이 시기, 노란색은 그에게 희망과 행복의 상징이다. 고갱과 함께 노란색 지붕의 집에서 살기를 원한 것이 그 예이다. 다른 한편 이들의 ‘피에타’를 보면 아들의 주검을 받아 안는 어머니의 손과 품이 아들에게서 멀어져 있다. 들라크루아는 아들을 죽음에서 구원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 어머니 마리아를 보여준다. 바로 이 점이 고흐에게 이 그림을 단번에 재현하게 한 계기일 것이다. 구도로 보아 어머니 마리아가 돌아가신 예수님의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로 보호자의 자리이다. 고흐가 이런 구도에 확 반한 것은 바로 이 모정의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정신적 어머니, 곧 그림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정신적 자폐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오직 한 길은 바로 그림이라는 어머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림에 열중할 수 있는 자신, 곧 예수님이 더욱 희망찬 노란색을 띤 것이다. 그는 이처럼 그림에서 삶의 희망과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그가 죽은 날 저녁 동생 테오가 고흐의 주머니에서 발견한 쪽지에 적힌 “그래, 나의 그림, 그것을 위해 나는 내 목숨을 걸었고 이성까지도 반쯤 파묻었다.”라는 글에서 이런 그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들라크루아의 ‘피에타’에 묘사된 어머니는 실제 아들을 품에 가득 안아 주는 이미지가 아니며, 또한 아들을 기꺼이 받아주는 어머니의 모습도 아니다. 고흐가 자신의 그림에서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죽음과도 같이 싸늘하고 무감각한 표정의 어머니로 묘사한 것은, 결국 이 고독과 고통은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까닭이리라. 온 정열을 쏟아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한 예술조차 자신에게 구원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한 것이다. 이것이 절대 고독의 순간이다. 벽에서 떨어진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본 순간 고흐가 느낀 감정은 이처럼 삶의 열정과 동시에 좌절이라는 양면성, 그림에 녹아있는 그 이중성이 아니겠는가? 고흐는 이렇게 인류 구원을 향한 거룩한 죽음을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 영원한 추락으로 전이시키고 있다. 그러면 이런 고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피에타’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인 것처럼, 진정한 종교적 구원이라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바로 인간이 운명적으로 나누고 행하는 사랑 말이다. 고흐가 이 그림을 더 작게 복제해서 여동생 빌에게 주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경향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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