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자상(Madonna and Child, 聖母子像)
ㆍ작성자: ㆍ작성일:2015-05-04 (월) 18:08 ㆍ조회:412 ㆍ추천:0

성모자상(Madonna and Child, 聖母子像)
 


성모자상(Madonna and Child, 聖母子像)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1435,  분리된 프레스코, 116 x 75 x 2 cm, 산 도메니코, 피에솔레의 수도원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이탈리아의 화가. 승명 프라 조반니 다 피에졸레(Fra Giovanni da Fiesole), 속명 구이도 다 피에트로(Guido da Pietro). 피렌체 근교의 베코에서 태어났다. 1417년까지는 속인이었지만, 이미 화가가 되어 있었다. 아마 18~20년에 피렌체 북쪽 근교의 마을 피에졸레의 도미니코회의 수도사가 되었을 것이다. 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30년대에 들어와서의 일로, <리나이올리의 제단화>(1433년경), 코르토나의 <수태고지>(1434년경), 루블의 <성모재관>(1435년경) 등을 그렸다. 38~45년 피렌체의 성 마르코 수도원의 복도와 승방에 벽화를 그렸다. 45년에 로마에 가서 에우게니우스 4세와 니콜라우스 5세의 의뢰로 제단화나 벽화를 제작하는데, 그 대부분이 소실되고, 겨우 니콜라우스 5세의 예배당을 장식하는 <스테파노와 라우렌티스전>만이 잔존한다. 로마 체재중인 47년에 고초리 등과 오르비에트 대성당 내 성 브리치오 예배당의 벽화를 장식했으며 50~52년, 피에졸레의 성 도미니코 수도원의 원장을 역임. 53~54년경에 다시 로마로 가서 그곳에서 사망했다. 안젤리코의 예술형성기는 초기 르네상스를 특징짓는 전통적인 고딕양식과 마사쵸의 자연주의 회화와의 두 개의 큰 흐름 중에 있으며, 그는 쌍방의 요소를 흡수해서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하였다. 즉, 그것은 명쾌한 공간에 순화된 형태를 나타내고, 밝고 순수한 색채를 화려하게 나타내고, 때로 엄격함도 갖춘 전아한 회화세계이다. <수태고지>나 <성모재관>을 주제로 하는 작품에서 그 전형적인 예를 볼 수 있다. 프라 안젤리코(천사와 같은 신부님)라는 뜻의 이름은 사후에 받은 이름. 성 마르코 수도원은 현재 안젤리코의 작품을 수장 ∙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되어 있다.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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