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을 보내며
   

가시는군요. 이제 이렇게 가시는군요. 
다 이루었다고, 다 마치셨다고 이제 주님께서 부르시는군요. 
주여. 어느새 그때가 왔습니까. 
추기경님을 보내야 하는 그때가 벌써 왔습니까. 

아프시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더 계서서 그 다감한 모습을 잃지 않으시고 
다시 저희들 앞에 서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시는군요. 
이 어려운 때에 저희들을 두고 가시는군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보내야 합니다. 한 시대의 어른을, 
어렵고 흔들리는 세파에서 언제나 꿋꿋하게 우리 편에 서 계셨던 기둥을, 
우리의 다사로운 이웃이었던 분을 이제 보내야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당신은 다리였습니다. 어둡던 시절에는 길을 알리는 먼 불빛이셨고, 
출렁이는 시대의 물결을 두려움 없이 건너가게 하시던 다리였습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나날은 동시대인에게는 위안이었고, 
함께 있기에 가질 수 있었던 행복은 희망이 영그는 밭이었습니다. 
추기경님. 아, 오래오래 저희들을 기억하소서.

우리는 추기경님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존경을 넘어서는 가까움이었습니다. 
추기경이라면 저희들 가톨릭 신자에게는 하늘처럼 높은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고개를 아파하며 바라봐야 하는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 교우 가운데 그 누가 추기경님을 높다고, 멀다고, 
어렵다고 했겠습니까. 

추기경님은 평범한 한 가장으로 살고 싶었다는 젊은 날의 추억까지도 
잊지 않으시던 다감한 어른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잃지 않으셨던 인간미가 우리를 그토록 
가깝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랑이 우리 곁에 오래오래 넘치도록, 저희들을 기억하소서.

추기경님께서 입원해 계신 병실에는 십자가와 함께 
테레사 수녀의 초상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는 묘비에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장 1절)’라는 
말씀이 새겨지길 바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나시는 추기경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라는 사목(司牧)표어, 
그 뜻이 우리에게 거침없이 이어지도록, 저희들을 기억하소서.

80년대의 그 어두웠던 세월,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군 추모미사에서 
정권을 향해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은가.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는가’ 외치는 
추기경님이 우리 곁에는 계셨습니다. 

1968년 서울대교구장으로 취임하실 때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믿었습니다. 
이제 추기경님의 뜻을 우리들의 몫으로 알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저희들을 기억하소서.

추기경님께서 늘 바라신 것은, 
이 땅에서의 용서와 화해와 일치 그것이었습니다. 
화해와 일치는 남을 받아주고 용서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고 
우리의 상처를 다독이실 때 우리는 비로소 미움을 넘어서는 
더 큰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용서가 없는 화해가 어떻게 가능하며 평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화해를 통해서만 우리가 함께 하는 일치의 삶이 있고 거기 평화가 있음을 
목마르게 우리에게 들려주신 그 말씀을 잊지 않도록, 
저희들을 기억하소서.

하느님. 
남아 있는 저희의 기도를 들어 주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만날 때까지 우리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추기경님, 저희들을 기억하소서.

 -한수산(작가. 세종대 국문과 교수, 요한 크리소스토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