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성’'이냐 '곤조'냐 

목수 에스씨는 쉰 중반, 열다섯 살부터 이 일을 손에 잡았으니 
햇수로 벌써 40년이 넘었다. 아는 이의 소개를 받아 그를 만났을 때 
맨 처음 눈을 끈 것은 40년 동안 쉴새없이 망치질을 하고,
또 수없이 그 헛망치질에 찧었을 두 손이었다. 
손가락 끝은 하얗게 거스러미가 일고 손톱은 들떠 있었다. 
별 망설임 없이 그에게 일을 맡겼다.
 
이사를 하면서 처음에는 도배와 장판만 할 생각이었다. 
인테리어를 하는 이를 만나 견적도 내보았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접 집 수리를 했던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쉽지 않지만 재미있는 일이라고 했다. 겁없이 공사에 뛰어들었다. 
이 책 저 책 들여다보고 목수를 물색했다. 
에스씨는 내가 처음 만나보는 목수였다.
 
세간을 들이지 않은 빈 마루 한복판에 합판과 각목이 쌓였다. 
나뭇내가 물씬 났다. 전기톱과 틀도 자리잡았다. 
집안은 하루종일 톱밥 냄새로 매캐했다. 
집에 돌아오면 머리카락과 옷에서 톱밥이 쏟아졌다. 
그래도 하루하루 더디나마 텅 빈 공간에 새로운 공간이 
생겨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이것저것 참견하면서 귀동냥으로 배운 것도 있었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냅다 망치로 여길 때립디다.” 
목수가 이마를 쓸어올리자 그곳에 작고 반질거리는 망치 자국이 보였다. 
그는 툭 하면 그 흉터를 보여주었다.
 
그에게는 수족처럼 그를 따라다니는 제자가 있었다. 
이제 갓 육 개월이 되었다는 그는 제법 눈썰미가 있어 몰딩을 
두르거나 목재를 재단하는 작업들을 해냈다. 
간혹 못질이 잘못되면 목수의 불벼락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 불뚝성미도 이미 단련이 되었는지 허허 웃거나 
안 보이는 곳에 대고 인상 한 번 쓰고 말았다.
 
가베와 덴조. 그에게서 주워들은 말이다. 
목공의 모든 용어가 거의 일본말이었다. 
그는 그의 스승에게서 그 말들과 톱질, 망치질에서부터 
거친 말투와 불 같은 성격을 모두 배운 듯했다. 
어느 날 그가 망치를 집어던졌을 때 그가 말끝마다 내뱉던 
노가다의 곤조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다. 
할 수 없이 다른 목수에게 일을 맡겼다.
 
더뎌진 목공 작업 때문에 페인트칠은 다급하게 이루어졌다. 
페인트칠이 되자 잘못 박아 솟은 못머리와 
수평이 맞지 않는 천장이 대번 눈에 들어왔다. 
우여곡절 끝에 페인트칠이 끝나자 이번에는 벽에 난 붓자국과 
사포질이 되지 않아 들뜬 문살이 보였다. 
사포질은 페인트칠의 기본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바로 페인트칠을 해준 장본인이었다.
 
집 수리를 하는 지난 한 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에게 우스갯소리로 집 하나 지으면 머리가 센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을 듯하다. 
먼지가 잔뜩 묻은 옷차림으로 음식점에 가 앉으면 
천장과 타일 등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닿았다. 
지난 한 달 동안 가본 음식점 중의 어느 한 곳도 
타일의 줄눈이 맞는 곳이 없었다.
 
삼사십 년의 경력이면 무슨 일을 하든 그를 존경할 수 있을 듯하였다. 
하지만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어떻게 그런 무책임함으로 
삼사십 년 그 일을 쭉 해왔는지 의심스러움과 실망만이 남았다.
 
잘 웃던 그 신참 목수는 어떤 목수가 될지 궁금하다. 
‘곤조’는 ‘근성’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왜 곤조라는 말이 나쁜 기질을 연상케 할 정도로 
왜곡되어 불리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가 선배 목수로부터 곤조가 아닌 근성을 물려받길 기대한다.
 
애면글면 하던 집 수리는 끝났다. 그들은 모두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자취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 
비뚤어진 천장과 튀어나온 못머리, 삐걱거리는 마루,
그리고 엉성한 페인트칠로.

- 하성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