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한 것은 세월이다


어찌 다 품고 갈까 하면
어떤 건 놓치고,
놓아주고,


더러는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라.


마음이 벅차하던 감격이나
죽음 같은 절망 따위는 


그 대부분이
망각 속에 스러졌으나


구태여 기억코자 하지 않는 
평범한 일들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네.


그 중 가끔은,
가슴 깊이에 숨어 있던 
어떤 감정들이


때 없이 솟아나와
내 의식의 일단을 집요하게 
집적거리는 것이니


돌이켜 보면
부끄러움도 한 세월이구나.


저승이 가까워져도
세월에 대해 


아직 나를 
다 알아듣지 못한 것은
무슨 연민일까.


가끔씩 깨 터는 소리처럼
후두둑 후두둑 쏟아지던 
당신 조차도


오늘은 내 안에서
너무 부끄럽네.


-월간문학. 2003.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