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간지에 실린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의 시-

밤 12시
조용하던 우리 집을 울리는 전화벨

"여보세요"
"딸꾹! 아구아구... 딸아~엄마다"

오늘도 드셨나보네
혀가 꼬인 엄마다.

"나와~ 나와 봐~ 딸꾹"
"왜~"

"엄마 술친구 해 줘야지"
"휴-우, 알았어"

바람 세차게 부는 밤,

오늘도 점퍼 겨드랑이에 손을 끼고는
엄마의 술친구 하러 가게에 나간다.

혼자서 한 잔 두 잔 드신 건지.
벌써 세 병째...

시뻘건 엄마의 얼굴엔 
그리움이 묻어 있다.

오늘도 빠지지 않고 설교중인
고교시절

"엄마는 말야~ 정말 잘나갔는데~ 딸꾹!
어, 지지배야 술잔 비었잖아...!!"

"응..."

따르고 또 따라도 계속 비는 술잔
"그만 마셔"

반쯤 남은 술을 버리자
엄마는 냉장고에서 술병을 또 꺼낸다.

"초롱아 미안 미안, 술을 안 먹으면 아파서 잠을 못 자"
"칫..."

짜증을 내는 내 손에 지폐 한 장 쥐여주며
술잔을 들이켜시는 엄마

"캬-아, 술친구 해줬으니까 주는 거야..."
너무나도 어색하게 웃어 보이시는 엄마

매일 밤 아빠와 말씨름으로
한 잔 두 잔 드시게 된 술... 돈이 뭔지...

한겨울에도 땀 삐질삐질 흘리며
부엌에서 손님 맞는 엄마

곱던 손에 조금씩 생기는 상처

나이 어린 손님에게도 꾸벅꾸벅 인사하며
존칭 붙이는 엄마...

손님이 잘못해도 "죄송합니다"
자존심 다 구기며 고개 숙이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나
오히려 짐은 아닌지

해줄 수 있는 건 밤마다 힘들고 지친
우리 엄마 술잔 채워주며
달래주는 일 뿐...

오늘밤도 여전히 
조용한 우리 집을 울리는 전화벨 소리.


현대 여성들이 살아가는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