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지 않고는 나올 수도 없는 문
 
주님, 고백합니다. 
요 며칠 동안 당신에 대한 극심한 분노와 의혹에 시달리고 있음을.

며칠 전, 동창생이 죽었습니다. 
동갑내기가 죽었을 때 내 차례도 멀지 않을 것 같아
심난해지는 것은 사실이나 피차 살 만큼 한 걸요.
설마 그까짓 일로 당신을 원망이야 하겠습니까?
부르시면 가야하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면 가는 나이가 바로 천수일 테지요.

그러나 그 친구는 정말이지 그 나이에 죽어서는 안 되는 
그만의 특수한 팔자가 있었습니다만, 그것마저 접어둔다고 해도,
그가 죽음을 위해서 삼사 년씩이나 참아내야 했던 너무도 힘든 
투병 생활에 대해서만은 당신 안에서 해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는 천성적으로 악기나 오기라고는 없이 다만 착하고 너그러웠습니다.
선량한 것이 흔이 우매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그는 학문에 대한 의욕도 대단해 병들기 전까지 
대학에서 가르쳤으니 거기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지적인 업적보다는 선하고 애정 깊은 인간성을 못 잊어 
마치 한쪽이 무너져내린 것 같은 상실감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그는 드물게 좋은 사람, 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건이 좋아서 그렇게 산 게 아니라 웬만한 사람이라면 
포기했을 악조건 속에서도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낸 것입니다.

주님, 
그 정도라면 뭐 하나라도 현세의 보상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물론 열심히 일한 착한 사람이 말년에 반드시 
부나 영예를 누리는 게 아니란 것쯤은 압니다.
그러나 죽음의 문제는 다르지요.
죽음은 당신이 관장하는 일이고, 당신이 전능하실 뿐 아니라 
공평한 분이시라면 그 아름다운 생애에 합당한 
평화로운 죽음을 주셔야 옳지 않았을까요.

더군다나 그는 임종의 순간까지 당신 하나만을 믿고 
어떤 고통도 참아 받은 신실한 교우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느님이 있긴 뭐가 있냐고 비웃어 쌀 만큼 
그의 고통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원망 끝에 문득 뭐가 떠올랐는지 아십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당신의 시신이었습니다.
십자고상이라는 걸 우러를 때 우리는 당신을 
직시하기보다는 늘 환상적으로 미화시켰습니다.
그러다가 막상 당신의 시신을 지상으로 내려서 
널 위에 뉘었을 때 피 묻고 찌그러지고 너덜너덜해진 
당신의 육신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참의 극치군요.

어찌 육신의 고통뿐이겠습니까.
세상의 비웃음, 제자들의 배반, 권력으로부터 받은 굴욕으로
극도로 외로워진 당신의 표정은 또 어떻구요.
그걸 피하지 못했으니 당신은 철두철미 인간이었고,
그걸 피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정말로 인간도 아니군요.
당신의 참혹한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느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는 그닥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이란 바로 제 자식도 이렇게 죽일 수 있는 아버지,
엄혹 그 자체라는 깨달음이 전율처럼 등줄기를 스쳤습니다.
그러자 당신의 말에 솔깃해서 당신의 자녀가 되겠다고 
약속한 걸 당장 파기하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도망쳐 나갈 문은 어딥니까.
들어온 문이 있으면 나갈 문도 있어야 하는게 아닙니가.
도대체 문을 어디다 숨겨놓으셨습니다.
뭐라구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요?
오오, 주님. 나가기 위해서라도 일단 들어가게 하소서.

글 : 박완서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