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 떨지 말기..."      

 “여러분들, 제발 환우들 앞에서 죽음에 대해서 아는 척하지 마세요. 
우린 죽어보지도 않았고, 그런 과정 중에 있지도 않지만, 
그분들은 죽음을 직접 경험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 분들은 우리보다 훨씬 죽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봉사자들에게 교육 때마다 당부하는 말이었다. 
호스피스 사역을 하면서 제일 막막한 일 중의 하나는 
내가 죽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마지막 여정에 
안내자가 되어주고 동반자가 되어주는 것이 
호스피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가르친다.  
사람들은 그 말이 주는 애틋하기도 하고, 
고귀해 보이기도 하는 어떤 느낌에 이끌려, 
호스피스 사역에 동참하기도 하고 
선뜻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내기도 한다. 
환우를 맡기는 분들은 ‘좋은 일한다’고 하고, 
환우들은 ‘미안하고 고맙다’를 연발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느덧 마치 노련한 관광가이드처럼, 
우리가 죽음이라는 길을 수십 번 수백 번 왔다 갔다 한 
전문가들로 그들에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고, 
아마도 우리 스스로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말기환우들보다 조금 더 건강하고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에 
우리가 그들의 죽음과 같은 고통에 대해 아는 게 뭐란 말인가? 
더구나 죽음이란 놈은 카멜레온과 같아서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놈 아닌가 말이다.

현실적으로 냉정히 인정해야 할 것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는 그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을 것 같은 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연결할 수 없는 절벽과 같은 심연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걸 ‘소외감’이라 부른다. 환우들은 우리들에게 소외감을 느낀다. 
그건 우리의 따스한 손길과 부드러운 위로의 말이 몇 번 와갔다고 해서 
극복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우리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물러섬과 다가섬에 대한 섬세한 살핌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하나님이 하셔야 할 것이 
분명해 진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스피스는 하나의 예술이다.  

호스피스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 나가는 이 때, 
물러설 줄 아는 걸음, 모른다고 인정할 수 있는 
머리 숙임이 더 값져 보이는 것은 
아마도 별빛보다 가로등이 더 밝아 보이는 시대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세상의 불이 모두 꺼지면 비로소 하늘이 보이고, 별이 보인다. 
가로등보다 별빛이 얼마나 영롱하고 아름다운지 
우린 그때서야 ‘와아’하고 감탄할 것이다.  

삶의 섬세한 기술, 
가로등이 필요할 때와 별빛이 필요할 때를 아는 것… 
가로등으로 교만하지 말지니…  
 
- 김 태민 (봄내호스피스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