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직(天職) 

내겐 국어과 2급 정교사가 천직이었다.
내게는 백 개의 까만 눈동자가 희망이었다.
아내는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생활의 채찍을 휘두르며 
국문과=굶는과 라며 
나의 무능을 후려쳤다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어
내 볼품 없는 의지는 바닥이 났고
백 개의 까만 눈동자가 어느덧 내겐 부담이었다
아내의 허리에는 살이 올랐고
나는 그녀의 통통한 웃음에 만족했다 
-아내의 만족이 내 천직일까?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날 선 칼을 들이대는
자해행위에 쾌락을 느끼는 
지독한 쎄디스트였다
함께 병들어 갔고
우리의 정원에는 여린 풀잎조차 돋지 않았다
수치를 모르는 아내는 
어디서나 주판알을 퉁겼고
삐거덕거리는 내 머리는
가냘픈 추억의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고
봄바람에 실려온 마른 풀 씨 하나
척박한 가슴을 쟁기질하고 있었다.
뾰족, 덧니 같은 노란 민들레 
한 송이 웃고 있었다
-내겐 국어과 2급 정교사가 천직
아내는 내게 그저, 사랑이었다
 
글:  배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