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이야기   

얼마 전에 깨달은 것인데, 제게는 이상한 증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과 매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지만, 
실은 제 이야기만 하는 증상입니다. 
증상이라는 말로 표현할 정도로 제 나름대로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은 상대방 역시 저와 비슷한 증상을 갖고 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기는 그런 증상은 저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매스컴에 등장하는 많은 공인들에게서도 마찬가지 증상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째서 그런 증상이 만연하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그제 연거푸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제는 이웃 부인 서넛이 우면산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산에 오르니 기분이 좋다는 공감을 나눈 것은 잠시. 
우리들은 각자 제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성지 순례를 다녀온 부인은 이집트의 사막과 피라미드를 이야기하며 올라갔고, 
남편과 다툼이 있었던 부인은 “이 인간 그 인간” 하느라 
아카시아꽃 향기나 햇살을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산에 오르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대강 옮기면 이렇습니다.  

“별은 사막에서 보아야 해요. 얼마나 별이 많은지….”  
“나도 곰국을 끓여 놓고 2박3일 여행을 다녀와야겠어요.”  
“이제는 파출부가 제법 음식을 맛깔스럽게 만들어 놓고 달아나요.”  
“2킬로 뺐더니 허리가 1인치 줄더라구요.”  

가만히 듣고 있자면 우리들은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묻고, 자신에게 다짐하고, 
자신을 나무라는…그런 식이었습니다. 
이런 대화방식은 그제 찻집에서 만난 동창생들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그럴까? 다른 분들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제 입장을 정리해 보았더니 몇 가지 원인이 있었습니다.  

우선, 관심사가 달랐습니다. 
그런데다 이야기를 나누는 태도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상대방이 관심을 갖는 주제를 듣고 이해하려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런 준비가 되어 있다 해도 아는 것이 없는지라 주고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다른 원인은 만나는 사람들이 늘 같고, 보는 것도 그만그만하고, 
사색도 독서도 전혀 않는지라 새로운 것을 습득할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많지 않은 경험일지라도 정리하고 유추하여 문제를 제기할 능력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아는 것도 일천해졌고 논리적으로 구축하는 힘도 모두 잃어버린 것입니다. 
제 세계가 주먹만한데 쟁반 크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반복되는 일상의 폐해겠지만, 이슬비처럼 우리 몸을 적셨던지라 한 번도 
축축하다거나 차갑게 느끼지 못하고 푹 젖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산다면, 머지않은 날에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사오정이란 별명을 얻을 것이 확실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만 이야기한다고 가정하면, 그리고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면, 
무엇이든 많이 알아야 합니다. 지식은 책과 다양한 만남에서 얻을 수도 있지만, 
잘 아는 사람의 경험을 듣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좀더 큰 새로운 세계로 나가보려는 욕망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형의 집의 로라가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은 참 넓고, 많은 사람들이 살며, 중요한 일이 또 있다는 걸 인식하자는 것입니다.  

- 오늘의 예화 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