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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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한 번만 더 통화할 수 있다면
     
    엄마와 한 번만 더 통화할 수 있다면 
    
    1남6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엄마가 할머니 같아 창피했는데 병실서 보낸 
    마지막 몇달간 가슴 속에 담아둔 얘기 쏟아내 엄마 휴대폰 해지 못하고 보관…
    버튼 누르면 목소리 들릴 것 같아 
    
    "지금 몇 시냐?"
    "엄마, 저녁 7시 20분이에요."
    "그럼 집에 가서 밥해야겠네…."
    잠에서 깬 엄마는 혼잣말처럼 말하곤 돌아누웠다.
    
     "아니야, 엄마. 오늘은 같이 자려고 다 준비해놓고 왔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날 이렇게 말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가슴이 무겁진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그날이 마지막인 줄 짐작했던 것 같다. 
    가지 말라고 잡고 싶었을 텐데, 차마 그 말을 못 하고 딸을 그냥 보냈다. 
    엄마는 그 뒤 바로 혼수상태에 빠져, 외롭고 힘들다는 그 먼 길을 
    식구들의 배웅도 받지 못하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났다. 
    작년 어버이날 하루 전날이었다.
    
    엄마는 마흔셋에 나를 낳았다. 
    1남 6녀 중 막내였다. 젖이 잘 나오지 않아 새우젓국에 죽을 쒀 먹이며 하루 
    하루를 애태웠고, 몸까지 유난히 약한 나를 키우느라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한다. 
    그렇게 키웠는데, 난 엄마가 창피했다. 
    친구들이 엄마를 할머니라고 놀려댔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버스 정류장에서 날 기다리던 엄마를 반갑게 맞기는커녕
     "왜 쓸데없이 나왔느냐"며 찬바람을 일으키면서 휙 앞질러가곤 했다.
    
    막내딸이 짝을 찾는 것도 못 보고 가실까봐 노심초사하던 엄마에게 
    난 늘 걱정덩어리였다.
    그 딸이 아들·딸 낳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대견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20여년 전 결혼했을 때, 엄마와 아버지는 내가 신혼집을 얻었던 서울 둔촌동으로 
    집을 옮기셨다. 막내딸이 어려움을 겪을까봐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엄마는 그해 겨울 눈길에 미끄러져 허리를 다치셨다. 
    그 때문에 부모님은 경기도 양평에 살던 오빠네 집에 들어가게 됐다. 
    그때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나도 자식들을 키우며 오십이 넘는 나이가 되어서야 엄마 마음을 조금씩 
    헤아리게 됐다. 지난겨울 생신 때 "엄마! 사랑해요"라고 쓴 카드를 드리자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시는 엄마 모습을 보면서 왜 평소에 그 말을 그렇게 
    아꼈는지 후회막급이었다.
    
    '버킷 리스트'란 미국 영화를 본 뒤, 난 식구들과 함께 꼭 하고 싶은 일을 꼽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를 만들어본 적이 있다. 
    '아들과 함께 '해병대 학교'에 들어가 뒹굴어보기' '한 달에 한 번씩 식구들과 
    무인도 여행하기' '전국 방방곡곡 산사(山寺)에 찾아가 예불 드리기'…. 
    하지만 '버킷 리스트'를 함께 할 대상에 엄마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나는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와 하고 싶은 '목록'은 
    생각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이별을 맞은 어리석은 딸이었다.
    
    엄마가 병석에 누웠던 마지막 몇 달은, 
    결혼 후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순간이었다.
    따뜻한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쌔근쌔근 잠자던 어린 시절 이후로는 
    엄마와 그렇게 가깝게 지냈던 적은 없었다. 
    엄마는 딸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려고 작심한 듯,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딸부자 집 막내딸이라고, 잠시나마 너를 지워버릴까 
    나쁜 마음을 먹었던 게 미안했다." 
    "친구들 엄마보다 훨씬 늙은 나 때문에 많이 부끄러웠지?" 
    "중학교 때 학교 선생님까지 찾아와 네가 소질이 있으니 무용을 시키라고 
    했는데, 그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못 들어준 게 미안해. 속 많이 상했지?" 
    엄마는 딸의 마음에 응어리가 남을까 걱정했는지 
    평소 잘 하지 않던 얘기까지 빠뜨리지 않고 털어놓았다.
    
    계속 이어지는 엄마의 병원 생활이 지루할까봐, 두꺼운 도화지에 
    가요와 동요 가사를 손 글씨로 크게 적어 가로 20㎝, 세로 15㎝쯤 되는 스케치북을 
    만들었다. 가요 '소양강처녀' '동백아가씨', 동요 '섬집아기'…. 
    엄마는 병실 창가에 놓아둔 스케치북을 한 장씩 넘겨가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평소에 흥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노래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스케치북에 실린 노래는 점점 많아져 50곡을 넘겼다.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엄마를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엄마 없이 맞은 2012년 새해는 작년과는 완전히 달랐다.
    돌아보니, 그동안 내가 든든하게 살아왔던 것은 엄마가 덮어준 
    사랑의 구름 이불 덕분이었다. 이제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버킷 리스트'는 
    엄마가 잠든 묘소에 자주 찾아가는 일밖엔 없다.
    
    엄마가 떠난 지 8개월째이지만 나는 엄마가 쓰던 휴대폰을 아직 해지하지 못했다. 
    언제든 버튼만 누르면 보고 싶은 엄마 목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통화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대부분의 딸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지요. 
    전, 엄마처럼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미숙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