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침묵!
한밤의 침묵!  
깊은 밤의 적막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이 현대에는 그리 많을 것 같지 않습니다.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밤은 우리들에게 고요와 적막이라는
대명사로 다가왔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밤은 소음과 혼란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듯 싶습니다.
그렇다고 낮 역시 조용한 것은 아니니 인간의 마음속에 고요와 침묵의 자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시간마저 케이블 TV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에게
빼앗겨 버리면 자신의 시간을 온통 바깥으로부터의 소리들에만
내어 맡긴다 할까 저당 잡히는 일마저 생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깥에서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살아가는
자페증도 병이려니와 바깥 소리에만 자신을 내어 맡기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는 듣지 못하는 외부지향증도 사실은 심각한 병입니다.
그저 밖으로 밖으로만 달리다보니 내면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주 무식해져 버리고 만 듯한 느낌입니다.
서로 나누는 대화의 내용도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들뿐이고
자신 안의 것을 표현하는 방법조차 이젠 잊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언제나 그러하시듯 침묵 속에 머무십니다.
한밤의 침묵보다 더 고요한 우리 내면의 방, 작은 세계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이 방의 고요를 맛보는 사람은 복됩니다.
그러나 이 방의 고요를 맛보기 위해서는 소음이 없는 물질적 고요에 몸이 길들여져야 합니다.
고요 속에 울려나오는 내면의 시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어떤 이들은
산을 오르면서도 귀에 음악 소리가 들려야 마음이 편해지는 모양입니다.
사실 외부의 시끄러움은 내면의 시끄러움을 덮어버리는
일종의 알콜이나 마약과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외부의 시끄러움으로부터 물러날 때 일어나는 이 내면의 시끄러움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텔레비젼도 음악도 없는 침묵! 몸마저 침묵시킨 그 고요!
그 침묵의 소리에 귀기울여 봅시다.
시끄러움 그 밑에 고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화로운 침묵이 온 세상을 덮고 밤이 달려서 한고비에 다다랐을 때에
주님의 전능하신 말씀이 이 세상 한가운데로 뛰어 드셨습니다.
이천 년 전 성탄은 고요했습니다.
주위는 적막했고 만물은 이 말씀을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하느님은 침묵 가운데 계시고 그 외아드님도 침묵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후 30여년의 삶도 대부분이 침묵과 가까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가장 활동이 많았던 시기 혹은 의회와 바라사이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려
음모를 꾸미는 어둠의 시기에도 침묵은 그분의 뒤를 그윽이 밝혀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로 밤의 침묵의 시간을 일부러 찾으셨습니다.
침묵 가운데 아빠의 목소리를 알아들었고,
침묵 가운데 고통으로 신음하는 가난한 이들의 소리를 알아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음의 침묵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고요히 눈감고 손가락 움직임조차도 멈추고 조용히 자신의 숨을 고르어 보십시오.
내면의 방, 내면의 고요를 들을 때까지 침묵의 소리를 들으려는 욕심마저 버리고
그저 고요히 한 숨 한 숨을 고르어 보십시오.
밤이 달려서 한 고비에 이른다면 어느덧 말씀이신 분의 침묵이
나의 침묵과 하나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오십니다. 이천 년 전과 마찬가지로 침묵 가운데......
내가 침묵의 방을 알지도 못한다면 우리는 오시는 그분을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침묵에 익숙해진 마음의 고요, 마음의 순결함!
복되도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뵈오리라!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소식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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