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은 도전의 시간이다    


평생을 두고 변화하는 관계들, 아이와 부모의 관계, 부부 사이의 관계,  
조부모와 손자 손녀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림 형제의 동화 
『할아버지와 손자』를 살펴보자.
 
옛날 옛적에 아주 늙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눈은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았고,  귀가 먹었으며,  무릎이 덜덜 떨렸다. 
식사를 할 때에도 숟가락을 제대로 잡지 못했기 때문에 스프를 식탁보에 흘렸고 
입에서도 스프가 질질 흘렀다.  할아버지의 아들과 며느리는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  
할아버지를 난로뒤 구석자리에 앉게 했다.  
음식도 안 좋은 그릇에 주었고  배불리 주지도 않았다.  
할아버지는  슬픈 얼굴로 식탁 쪽을  바라보았고 그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러다 한번은 그릇을 들고 있던 손이 떨려 그릇을 깨뜨리고 말았다.  
젊은 며느리는  할아버지를 야단쳤지만 할아버지는 말없이 한숨만 쉬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며느리는  싸구려 나무 그릇을  사와 거기에  음식을 주었다.  
식구들이 모여 앉아 있을 때  다섯 살짜리 손자가 땅에서 작은 나무관을 주워 
나르는 것을 보고 아이의 아버지가 물었다. 
"얘야, 그걸 가져다 뭘 하려는 거냐?" "그릇 만들 거예요. 
나중에  내가 크면  엄마랑 아빠  밥은 여기에 담아줄 거예요."  
이 말을 들은  아들과 며느리는 잠시 서로를 쳐다보기만 하다가 눈물을  흘리며 뉘우쳤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바로  식탁으로 모시고 왔고 
할아버지가 음식을 흘려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부모들이 직접 자녀에게 가르치던 것을 스스로가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될 때,  
손이 떨리고 숟가락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음식을 흘리게 되면 
이제 어른이 된 자녀들은  부모에게 크게 실망한다.  
그래서 이 동화에서처럼 그런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자녀들은 아버지가 자기 아이의 양육문제에 간섭을 하거나  
뭔가 잘못해서 고립시킨 것이 아니다.  
단지 아버지가 늙고  그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간과한다.  
그러나 손자는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을 정확히 관찰한다. 
그리고 부모의 거울이 되어 그들의 모습을 비춘다.  
엄마 아빠가  늙으면 음식을 담아줄 나무 그릇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거울을 들여다본아들과 며느리는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하는지 깨닫는다.
   
이 동화는 늙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자녀들은 늙은 부모를 보살피는 일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고 부모의 행동에 
비위가 상할 수도 있다. 자녀들은 은연중에 부모가 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잘 통제하기를 바란다.  
늙어버린 부모의 무능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들에게는 쉽지 않다.

동화 속 할아버지는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여준다.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통제하는 품위 있는 모습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  
늙고  병들어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모습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다. 
이렇듯  노년은 자신의  진짜 모습과  대면해야 하는  도전의 시간이다. 
상상하기조차 싫어했던 노화를 받아들이고,  타인의 도움에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을  
목도해야 하는 때다.  이것은 우리가  노인들에게 더 너그럽게 대할 수 있도록 하며,  
이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더 너그러울 수 있게 된다.
   
노인 사이의 관계, 성인이 된 자녀와 늙은 부모의 관계, 손자 손녀와 조부모의 관계,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어서 흐르는 물과도 같다.  
그리고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부부 중에는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변했다며  아내나 남편을 구박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좋았던 그 모습 그대로 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관계는 정체하는 관계이다. 
사람의 관계는 언제나 변화와 변동의 중심에 있다.
   
오늘날  노인과 젊은이의 관계는 두 가지 위험에 처해 있다.  
젊음을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싫어하거나 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젊음을 찬양하고  무조건 젊은이들을 따라하는 추세가 있는데  
이것은 꼴불견일 때가 많다. 늙은 나이에 젊어 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은 알고 보면  
자신의 노년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형태의 위험은 젊은이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다. 
"우리 때는 안 그랬어"라고 말하며  젊은이들이 하는 일은  무턱대고  
안 좋게 보는 노인들이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젊었을 때 말썽 부린 일이나 
부모에게 걱정 끼쳤던 일은 까맣게 잊고 있다.  
그들은 젊은이들을  욕함으로써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 자신의 나이와 화해하지 못하고 
노년의 가치를 부정하는 자신의 무능력을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노인들이 젊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 사람이 자신의 나이와 화해적 관계에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반대로 젊은 사람들이 노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들이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나이 드는 일을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지,  
노년이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노인들에게 투영하는지 알 수 있다.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김진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