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노년에 들어선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더 이상 쓸모없어지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가정을 가꾸는 주체였고 명령권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된 자녀들은 각자의 길을 간다.
더 이상 부모를 필요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조언도 듣기 싫어한다.
어머니는 딸의 집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싶어 하지만 딸은 스스로 자신의 집을 가꾸고 싶어 한다.
회사에서 중역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은 은퇴 후에 아무도 그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쓸모없어진 사실에 깊이 상심한다.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는 두려움은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빨리 나타난다.
각자의 가정을 꾸린 자녀들이 더 이상 어머니를 어머니로서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는 직장을 그만 둘 때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직장에서 그는 중요한 시안을 결정하는 사람이었고 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다.
그가 없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은퇴 후에는 가끔 집안일이나 도울뿐
더 이상 어디에도 필요치 않은 존재처럼 느낀다.
두려움은 억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나름의 이유와 의미를 가진다.
사람은 자신의 두려움에서 이제까지 자신을 정의해온 것이 무엇인지 느낀다.
남들에게 필요한 존재로서 자신의 가치를 추구했던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움을 가진다.
사람들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고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며 내 조언, 하다못해
내 돈이라도 필요로 한다는 것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느꼈던 사람은
이제 돈을 벌지 못하고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어진 상황에서
삶을 사는 다른 이유를 필요로 한다.
두려움은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면 어떨지 상상하도록 나를 부추긴다.
그러면 나는 아무 가치도 없어지는 것인가. 그럴 때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무엇이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이처럼 두려움은 내가 나로 인하여 사는 것인지 아니면 신으로 인하여
사는 것인지의 질문에 답하도록 나를 부추긴다.
어쨌든 나의 쓸모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진다.
늘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면 내게 되돌아오는 것은 거절뿐이다.
그러나 내가 나로 인하여 산다면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기꺼이 조언을 구할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쓸모가 나의 존재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김진아 옮김)
노년의 기술-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