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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기술-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일과 직장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많다.
      노인이 되어서도 생산적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문하는 사람도 많다.
      노동은 과연 노년의 일부일까? 퇴직자가 혼자서 할수 있는 일,
      그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노년에도 노동을 하며 반드시 뭔가 이루어내어야만 할까?

      외르크 칭크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생산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여든일곱 살의 그는 새벽네 시면 일어나 책상머리에 앉아 집필을 시작했다.
      기상 후 네 시간은 창조적인 일을 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모든 노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령이 되어서도 놀랄 만한 생산성을 보여준 이가 많다.
      노년에는 생계를 위해 글을 쓰지않는다. 즉 집필의 부담도 적어진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현대 세계를 움직이는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노년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노인들도 노동을 했다. 물론 젊었을 때와는 다른 일이었다.
      며느리가 소를 먹이거나 밭일을 나가면 할머니는 가사를 돌보았다.
      할아버지는 농장에 나가 일을 도우며 기력이 되는 대로 농장 살림을 했다.
      그것은 할아버지에게도 농장에도 축복이 되었다. 노동의 강도도 노인이 하기에 적당했다.
      쉰 살에 했던 일을 고령의 노인이 꼭같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노년의 노동은 변화한다. 노년에는 일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잘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가 중요해진다. 노년의 노동은 시간을 때우기 위한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일 때 의미가 있다

      노년에 들어서야 자신의 창의적 재능을 발견하는 사람도 많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작업실을 차려놓고 DIY 가구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의미 있는 노동이다. 이것은 직접 일을 하는 노인에게는 행복이 되고
      손수 짠 양말을 선물로 받은 손자 손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의 체험이 된다.

      그렇다고 반드시 이런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노년에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창의적인 일을하라고 노인들을 닦달할 일도 아니다.
      노인들이 의미 있는 일을 찾아내면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면 된다.
      그리고 더러는 평생 일만 했으니 이제는 독서나 여행 등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조용히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노인들도 있다. 이런 노년도 괜찮다.
      그러나 노년의 활동을 능력과 성과에 따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활기차게 사느냐이다. 어떤 사람은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
      어떤 사람은 삶에 대한 관심에서, 다른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에서,
      또 다른 사람은 깨어 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색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다.

      일명 '퇴직자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기름칠을 안 하면 녹슨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종래의 의무와 속박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퇴직 전보다 더 바쁘고 더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이기 일쑤다.
      과연 이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는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옛말에 그른 말 하나 없다고 위의 속담에도 진실이 담겨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과거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녹이 번지기 시작한 철판처럼 쉽게 녹슨다.
      그러나 은퇴한 노인들이 스트레스를 감수하면서까지 바쁘게 살려고 하는 모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노인이 너무 능력을 중시하고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
      사회에서 쓸모없어진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 과거에 연연해하는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오직 일과 능력에 의해서만 스스로를 규정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나이에 맞는 성숙함을 바라기 힘들다.

      퇴직자들이 퇴직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바람직하지 않다.
      가끔 보면 퇴직 후에 얼마나 활동을 많이 하는지, 그래서 얼마나 시간이 없는지 자랑하는 노인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도착적 세계의 표현일 뿐이다. 융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노년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개울물 흐르는 소리도, 영혼의 낮은 박동소리도 듣지 못한다.
      노년에 일 자랑을 하는 것은 자아도취적 인간이라는 표현일 뿐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자신의 능력을 온 세상에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상 지도자이자 선사인 칼프리드 그라프 드뤼크하임에게 한 일흔 노인이 젊은이들도
      두려워하는 위험스러운 등반에 성공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선사가 대답했다.
      "바보짓입니다. 곧 나이 때문에 못하게 될 일을 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계속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김진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