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별을 위한 이별연습  

  

삶을 살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별을 경험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작별을 고하고 직장과 헤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사를 가거나  세상을 뜨면 

그들과도 멀어져야 한다.  

또한 삶에 대해 가졌던 이상,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따랐던 환상들과도 이별해야 한다.  

죽음은 그 모든 이별 중 가장 중요한 이별이다. 

살면서 연습한 모든 이별을 총망라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이  죽음이다. 

이 이별을 위해 우리는 수많은 이별연습을 해온 것이다. 

인생에서 헤어지는 연습을 잘한 사람은 

아마 죽음의 이별에서도 성공적일 것이다. 

   

이별의 성공 여부는  때때로 버림받은  기억에 의해  판가름  난다. 

어릴 때  엄마나 아빠,  친구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있는 사람은 이별을 힘들어한다. 

모든 이별에서 어린 시절의 버림받은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죽음 또한 그 상황을 환기시킬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두려움,  

어두운 죽음의 성문을 혼자서 지나가야 한다는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버림받은 기억을 대면하는 일은 잘 죽는 연습의 일환이 된다.  

어린 시절 버림받은 나를 들여다보고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아이를  품에 안아주자.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며  영원한 고향으로의 귀환이다.  

그곳은 더 이상  버림받지도 않고 이별할 일도 없는  영원한 안식처다.

  

'지금이 남은 인생을 시작할 때다.' 

이 말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지금이 남은 인생을 시작할 때다'라는 속담은 

삶의  어느 순간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옛날 수도승들도 매 순간 새로 시작하는 것을 영성의 한 형태로 여겼다.  

그래서 한 수도승은 자기의 영성을 지도 하는 스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스승님,  내가 시작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한 늙은 수도승은  죽어가는 인간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듣는 신의 목소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회개하라!"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도 인간은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삶의 매 순간이 남은 인생을 시작할 때다.  

이 말이  과거를 놓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과거의  잘못이나 상처 주위를 맴도는  노인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은 제대로 살지 못했거나  열심히 살았는데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잊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노년을 괴롭힐 뿐이다.  

지금이  '남은 생을 시작할 때 라는 말은 앞을 향하게 한다. 

과거의 자신을 비난하거나 동정하던 시선을 거두어 앞날을 향하게 한다. 

바로 이 순간 내 남은 인생을 시작하고  주님도 나와 함께 새로 시작하신다.  

그러면 과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이 말은 곧 어느 순간이든 다 소중하다는 뜻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는 노인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은 여기 지금 현재에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죽음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 태도가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라고 배웠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내 죽음은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삶과 죽음의 관계는 무엇인가?

   

내 경험으로 보자면 죽음에 대한 생각을  거부하는 것은 좋지 않다. 

모든 철학은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머릿속에서 죽음을 몰아내는 것은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매달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몰아낸다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을 몰아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의 유한성을 일깨운다.  

그리고 이 유한성이 삶을 바꾼다. 

융은 중년부터는 죽음을 자각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삶에서 죽음을 제외시키는 사람은 삶의 법칙 하나를 

제외시키는 것과 같다.  죽음과 친구할 수 있다면  삶의 기술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죽음은 삶을 집중적으로 살게 한다. 

모차르트는 병든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죽음을 친구로 생각하며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고 썼다.  

그리고 죽음은 그에게 행복의 열쇠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그가 죽음을 극복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하늘과 땅, 삶과 죽음을 연결한다. 

그의 음악에서 항상 묻어나는 멜랑콜리의 한가운데서 유쾌함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삶은 죽음에서 끝난다. 

이 사실을 외면하면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바로크 시대에는 죽음이 하나의 거대한 테마였다.  

어느 교회에서는 낫을 든 해골을 볼 수 있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에는  죽음의 극복에 대해 

노래하는  아리아 부분이 계속해서 나온다.  

성탄 칸타타 BWV 64에서는 알토가 '천국에 갈 수만 있다면  

나는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소'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칸타타「내 예수를 보내지 않겠소 BWV124」에서는 

알토와 소프라노가 듀엣으로 이렇게 노래한다.   

"마음이여, 세상으로부터 떠나라.  천

상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이런  노래들은 세상회피의 표현이 아니었다.  

바로크 시대 사람들은  현세적인 것을 즐겼지만  

그들에게  죽음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현세적 감각과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힘에 대한  자각이 

빚어내는 긴장감 속에서 바로크는  활기로 팔딱거리는 

생기 있는  문화를 생산해냈다.

   

초기 수도사들은 끊임없이 죽음을  목도하라고 충고한다.  

한 늙은 수도사에게 왜 그렇게 두려움이 없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매일 죽음에 대해 명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모든 두려움을 없앤다는 것이었다.  

성 베네딕트도  수도사들에게 매일매일 죽음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그에게 영성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죽음의 존재는 삶을 값지고 맛있게 한다.  

삶과 죽음은 한 줄에 꿰어진 진주알과 같다.  

동화에 보면  인간의 죽음을 속여 넘기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화「죽음의 신」에서 죽음은  한 남자아이의 대부가 되고  

아이가 자라자 유명한 의사로 만든다.  

그러나 의사가 죽음을 속여 넘기려 하자  그 자신이 죽게 된다. 

「죽음의 사자들」에 보면 죽음이  인간에게 끊임없이 심부름꾼을 보낸다.  

병, 열병, 어지럼증 등이  점점 다가오는 인간의 종말을 환기시키는 

죽음의 사자들이다.  그러다  죽음이 마지막으로 거론하는 것은 잠이다. 

 "매일 저녁 내 친형제인 잠을 보냈는데도  나를 떠올리지 않았단 말이냐?"

   

노년에는 우리의 종말을 환기시키는  죽음의 사자들이 늘어난다.

깨어 있는 삶을 살라는 이 사자들의 초대에 우리는  흔쾌히 응해야한다. 

죽음은 삶을 강하게 한다.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세상일을 잊으라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에게 삶의 기술을 가르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제대로 살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이 삶이 한 번뿐이며  

유일무이하다는 것도 안다.  

죽음은 삶의 존엄성을 부각시킨다.  

그냥 아무 데나 널려 있는 삶이 아니다. 

이 삶이 단 한 번뿐이라면, 죽음 전까지 남은 이 시간 이 

내 삶의 전부라면 온 존재로  마음과 힘을 다해  살려 할 것이다. 

그리고 삶의 맛을 충분히 음미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나는  사랑으로 삶에 투신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지음, 김진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