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추천: 0  ㆍ조회: 829  
프란치스코 교황님-권위 없는 연설가



    권위 없는 연설가(Speakers without authority)

    산타 마르타의 집 소성당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아침 묵상, 2014년 6월 26일 (목)


    사람들은 마음을 이해하고 움직일 줄 아는 "착한 목자"를 필요로 한다. 예수님께서 그러신 것처럼.
    관념이나 도덕적 결의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믿음 없이 모든 것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힘있는 사람들과 타협하는 사람들을 떠나고, 정치적 견해나 사람들과 동떨어진 사상에 기초해서
    소위 해방전쟁을 시작하려 시도하는 혁명가들을 떠나서, 우리가 가까이 따라야 할 사람은 그다.
    [결의법 casuistry 사례를 의미하는 라틴어 casus에서 유래된 말로서, 도덕적 원리를 특정 사례에 적용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미사 중에 이러한 4가지 접근법에 초점을 맞추셨다. 교황님께서는 우선,
    예수님을 따랐던 실로 거대한 규모의 인파를 강조하셨다: "빵을 많게 한 기적이 일어난 날을 생각해 봅시다.
    거기에는 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가까이서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몹시 놀랍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따랐다고 복음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훌륭하고 위대한 것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이죠. 예수님께서는 정말로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7,21-29)의 말씀이 이 놀라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권위가 있는 스승을, 설교자를, 전문가를 필요로 했습니다. 권위가 없는 이들이 연설을 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말은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대신,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하신 말씀은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들 율법학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들은 당시에 사람들에게 연설했지만,
    그 메시지는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서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교황님께서는 4가지 유형을 설명하셨다.

    "분명 가장 잘 알려진 집단은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물론, 좋은 바리사이들도 있었다고 교황님께서는 강조하셨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를 언급하실 때에는 좋은 이들이 아니라 나쁜 이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에 관한 종교적 의식 즉, 일련의 계명을 실천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10개의 계명으로부터 300개 이상의 계명을 만들어냈죠! 요컨대, 그들은 이 짐을 백성의 어깨에 지웠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해야 하오! 당신은 해야만 하오! ' 그들은 살아계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결의법으로 축소시켰으며,
    결국 가장 잔혹한 결의법이라는 모순을 초래했습니다. 백성 측에서는 그들을 존경했습니다.
    백성들은 공손했으니까요. 그러나, 이 결의론적인(너무 정밀한) 설교가의 말에 귀기울이지는 않았습니다."

    "또다른 집단은 사두가이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권력가와 협상함으로써 자신들의 종교적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힘있는 사람들과 말이죠. 요컨대, 그들은 권력의 사람이었으며, 모든 이와 흥정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 역시 따르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집단은 혁명가들입니다. 그 시대에는 흔히 열혈당원이라고 불렸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로마의
    점령으로부터 해방시킬 혁명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게릴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식이 있으며 열매가 익었을 때와 익지 않았을 때를 구분할 줄 압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집단은 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에세네파입니다. [금욕, 신비주의의 한 파로,
    황야에서 금욕생활을 하며 선과 악의 최종대결을 기다렸던 유대인 집단] 그들은 수도자였으며,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한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수도원에서 관상과 기도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과 동떨어져 있었으므로 백성들은 그들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백성에게 다다른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이들 목소리 중 어느 하나도 백성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힘이 없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해내셨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이 놀란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분의 메시지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백성의 마음을 치유하셨습니다. 백성의 문제를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이야기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방문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쁨을 느끼셨습니다. 그분은 백성에게 다가가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에서 몸소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듣고 나를 따른다.""

    "이것이 바로 백성이 예수님을 따른 이유입니다: 그분은 착한 목자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분명 결의론적이며
    도덕주의자처럼 구는 바리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권력가와 정치적 협상을 하는 사두가이도 아니었구요.
    백성의 정치적 자유를 추구하는 게릴라도 아니었습니다. 수도원에 있는 관상가도 아니었지요. 그분은 목자이셨습니다.
    그분은 당신 백성의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이해시키셨죠. 그분은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일이었죠: 그분은 절대 하느님의 일을 협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백성이 하느님의 일을
    사랑하는 그 방식으로 하느님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그분을 따른 이유입니다."

    "또다른 핵심은 예수님께서 절대로 백성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았으며, 아버지로부터도 멀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셨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권위를 지니셨고 사람들이 그분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묵상하는 것은 바로 양심을 성찰할 기회입니다: "나는 누구를 기꺼이 따르는가?
    관념이나 도덕적 결의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인가? 자신을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믿음이 없고
    모든 것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힘있는 사람들과 협상하는 사람들인가? 늘 이상한 것, 파괴적인 것,
    소위 해방전쟁을 하고 싶어하고, 결국에 가서는 주님의 길에 있지 않은 사람들인가? 아니면 멀리 떨어져 있는 관상가인가?""

    "여기 자신에게 던질 핵심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를 기꺼이 따르는가? 누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이 질문이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청하도록 우리를 다그쳐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가도록,
    예수님을 따르도록,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놀라워하도록, 당신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청하도록."

    번역 :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레늄 크리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