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와 종소리 

뭍에서 5리 떨어진 바다 가운데 섬에'천종사'가 있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빼어난 장인들이 부어만든 
그 절의 크고 작은 종들이 혹 폭풍이 몰아침에 따라
일제히 울려 교향악을 이루며 듣는 이들의 가슴을 
황홀경으로 몰아 넣곤 하였던 것이었다.

수백 년 전에 그러나 섬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자 
종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졌는데,
오랜 옛적부터 전해 오는 말로는
상기도(:그윽하고 상쾌한 기운이 도는) 종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오고 있어 귀담아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능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전설을 듣고 감동한 어느 젊은이가 종소리를 듣기로 결심하고 
천리 길을 톺아(:샅샅이 더듬어 뒤지어 찾아)
일찌기 절이 섰던 곳의 맞은편 바닷가까지 왔다.
그리고 거기 자리잡고 앉아 귀를 기울였다
- 온 마음을 다하여.
그러나 들리는 것이라곤 바닷가를 때리는 물결 소리뿐...

젊은이는 그 소리를 떨쳐 버리고 종소리를 들으려고
갖은 방법을 다하여 안간힘을 썼지만, 모두가 헛일이었다.
온 누리가 그저 바다의 소리로만 넘치는 것 같았다.

몇 주간을 두고 젊은이는 이 일을 계속했다.
마음이 흔들리며 실망에 빠지려면,
그곳 마을의 힌두 학자들을 찾아가 말을 듣곤 했다.
그들은 '천종사' 종들의 내력과 그 종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전설을 감개무량한 어조로 얘기해 주었고,
단연코 그 전설은 진실이라고 확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젊은이의 가슴에 다시 불이 붙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또 몇 주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
또다시 실의에 빠지고...

끝내 젊은이는 단념하고 말았다.
아마도 자기는 '천종사' 종소리를 들은
행운아 축에 들 팔자가 못 되겠거니,
혹은 어쩌면 그 전설이 진실은 아니겠거니 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실패를 자인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은 날,
마지막으로 젊은이는 그동안 정든 바다와 하늘이며
바람이랑 야자나무들에게 작별을 고하러 바닷가로 갔다.
모래밭에 앉아 하늘을 우러르며 
젊은이는 바다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날은 그 소리에 굳이 저항하려 하지 않고,
도리어 가만히 자신을 맡겼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그소리,
그 휘몰아치는 파도 소리가 그날 따라 상냥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포근한 소리로 들려 왔다.
어느새 젊은이는
거의 자기 자신조차 의식하기 어려울 만큼
그 소리에 흡수되었고,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서 그 소리가 울려나오게 될 만큼
깊은 고요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깊은 고요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댕그랑~~~~~ 
작디 작은 종의 소리, 
이어서 또 다른 종소리,
또 다른 종소리, 
또 다른... 
그러다가 이윽고
1천 개의 종 소리가 고스란히 어우러지며
현란한 합주곡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고,
젊은이의 마음은 두둥실 
경이와 기쁨에 더불어 실려 가고 있었다.

절의 종 소리를 듣고 싶거든 바다의 물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 하느님을 뵙고 싶거든
   주의깊게 피조물을 바라보라.
   궁리하지 말라.
   그저
   바라보라.
     
앤소니 드 멜로 (1931~1987 - 예수회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