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야 할 때 
 
유아기는 삶에 자신을 내맡기는 때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믿음을 배우고 이로써  삶에 대한 믿음을 얻는다.  
청소년기는 개인의 정체성을 찾고 나보다 높고 큰 어떤 것을 향해 팔을 뻗어야 할 시기다.  
청소년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삶이 자리를 찾기 위해 모범이 될 만한 사람과 이상이 필요하다.  
성인기의 과제는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매진하는 분야에서 결실을 맺는 일이다.  
중년에는 방향의 선회가 이루어진다.  바깥을 향해 나 있던 길이 점점 내면을 향하고 
삶을 사는 새로운 의미가 필요해진다. 인생의 의미를 외적인 가치의 축적에서만 찾기 힘들어지는 때다.  
중년부터는  늙어가는 일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이르는 길을 찾아야 한다. 노년은 인생에서 이룬 성과, 
인간관계, 체력, 권력, 영향력을 손에서 놓아야 할 때다.  
그래야 노년의 새로운 가치들인  지혜, 너그러움, 여유, 자유가 그 자리에 들어설 수 있다.

노년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첫 번재 단계는 퇴직과 함께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는 일과 직장에서의 위치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퇴직자들이 아직  정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니 기력이 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야 한다. 
자원봉사자는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되는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일흔 살에 시작되기도 하고 일흔다섯 살 혹은 여든 살에 시작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순수하게 존재만을 위해  내면의 고요 속으로 한 발짝 들어서야 할 때가 온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몸이 따라주지 않아 새로이 시작한  노년의 활동으로부터도  물러나야 하는 때가 찾아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는 병이 나면 병을 받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견디는 시기다.  
이 단계 또한 사람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다.  어떤 사람들은  지병이나 노환 없이 가기도 한다.  
활동적으로 잘 생활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퇴조를 보이기 시작해  빠르게  죽음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활동적인 상태와 퇴영의 상태 사이에 타인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시기가  
끼어들기도 한다.  신체적 무능에 그칠 수도 있지만 치매로 인한 정신적 무능이 찾아올 수도 있다. 
이런 시기를 잘 치러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치매 상태에서는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가 없다. 
변화에 대한 의지의 불꽃이 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전에 미리 대비하고 준비할 수는 있다. 
정신이 어두운 상태가 올 때 자아를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고 나를 규정한다는 
생각도 버리고 자의식을 포기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모든 소통의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어떤 외부세계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영혼의  밑바닥으로  침잠할 수 있도록 말이다.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김진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