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군종 신부의 글

병사들과 미사를 드리다 보면 재미난 일들이 많습니다.  

군생활이라는 게 '하고 싶은 것 못하고',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는 것'이라서 그런지 ...
녀석들은 철저히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버립니다. 
가방 끈이 긴 놈이나 짧은 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오히려 짧은 녀석이 더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는 녀석이 별로 없습니다. 
십중 한 둘 정도나 될까? 

이런 지경이니 미사 때 독서나 기도를 시키면 환상적입니다. 
완전히 "아버지.. 가방 에~ 들.어.가심.다" 입니다. 

처음에는 답답해서 타이르면서 안심시키고, 가르쳐보기도 했지만.... 
개인차가 워낙 커서 십인 십색인데다가 어느 정도 할 만하다 싶으면 
후다닥 제대해 버리고, 다음 놈은 또 마찬가지라... 
이제는 그냥 참고 삽니다.

어제 공소 미사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병사가 제2독서를 읽다가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고...... 
왕 중의 왕이시고 군주 중의 군주이십니다"(1 디모 6, 15)를-->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고.............군종 중의 군종이십니다"로 읽는 것이었습니다. 
꼴에 군종병이라고 '군주'를 '군종'으로 보았던 모양입니다. ㅠㅠㅠ 아후~
하도 어이가 없이 웃겨서 "키득 키득~"  웃고 있는데.... 
녀석은 아랑곳 하지 않고 ".....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웃는 모습에 다른 병사들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잠시 머뭇 거리더니... 글쎄..
"그리스도님 ... 감.사.합.니.다" 그러는 거에요.   띠요~ㅇ 

우리 아이들이 이래요. 순진한 것인지.. 모자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녀석 덕분에 저는 잊었던 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야말로 군종 중의 군종'이시라는 것을. 

그동안은 내가 혹은 군종신부만이 군종이라고 알고 살아왔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군종신부가 있기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와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군종신부가 아니라 그분이 먼저 무시당하셨고, 외로움에 떨고, 불
규칙한 식사로 위장병에 걸리시고, 술주정뱅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잘 해보려고 했지만 좌절당하셨고...
이런 저런 오해를 받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나도 말년인데.. 대충하자"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