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마냥 즐기기도 해야 한다.

   

최근에 지인에게서 들은 말이다. 

어느 날 하루 종일 되는 일이 없어 짜증을 내자 그의  늙은 아버지가 말했다.  

"내 나이에는 1분 1초가 아깝다."

이  말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만일 그의 아버지가 아직 인생에서 할 일이 많은데  

오늘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해서  시간이 아깝다는 뜻으로  말했다면 

가시적  성과에 연연하는 한 인간의 내적 궁핍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해석의 가능성도 있다.  

만일 그 아버지가  화가 난 이유가  오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그와 다툰 것 때문이라면 그 말은 정신적 성숙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이 이렇게 적은데 그 소중한 시간을 쓸데없는 잔소리나 말다툼으로 

허비할 수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는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싶고  하루하루가 소중한 사람이다.  

외적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를 어떤  마음자세로 살 것인지는 오직  자신에게 달린  문제다.  

이 아버지도 자기에게  허락된 하루를  마음을 다해  열심히 살고 싶은 것이다.  

대화 속에서 깨어 있고 싶고,  오늘 만난 사람에게  자기가 열려 있는 사람이었기를 

바라고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열려 있는 눈으로 보는 사람이고 싶은 것이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살고 싶지는 않다 만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면 

그 말은 성숙한 인간의 표시이다.  그는 한 인간의 삶이 소중하며 

매일매일 삶의 흔적을 세상에 남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선명한 흔적을  남기고 싶은데 오늘  불분명하고  흐린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시간을 허비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1분 1초도  아까워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 속에 스스로를 내놓는 것도 좋다. 

그러면 하루하루를 선물받은 것처럼 살 수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시간의 한계는 깨어 있는 삶을 살라는, 온전히 순간을 살라는 초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자기 삶의 기준과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  실현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  

나에게 허락된 이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살고 싶은가?

시간이 아깝다고 해서  최대한 많은 성과를 보기 위해  

최대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더 많은 일을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라. 

그리고 의식적이고 집중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라.

   

그러나 삶을 즐기기도 해야 한다. 

이것은 이기주의적인 생각도 아니고 시간을 활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즐기되  좋은 취향으로 즐겨라.  

그러면 그 시간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시간이 된다.  

시간을 죽이거나 '바쁘다 바빠'로 일관하면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 스스로가  지루해 죽겠는데 그 지루함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바쁜 척하는 당신 앞에서 사람들은 슬슬 꽁무니를 뺄 것이다.  

당신의 '바쁘다 바뻐' 병에 전염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은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 할것이다.  

당신이 가진 삶의 기술,  자신과 하나 되는 방법,  삶과  화해하는 방법, 

가진 것은 적지만  그것을 즐길 줄 아는 당신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할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같은 시간이다. 그러나 시간을 즐길 때 그 시간은  

당신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질적으로  다른 시간이 된다. 

그러면 당신은 똑같은 시간을  선물받은 시간으로 만드는 기술을 가진자,  

생의 마스터로서 사람들에게 추앙받을 것이다. 

   

늙은 일이 이별과 짝꿍이라는 말은 거스를 수 없는  진실이다.  

늙어가는 일,  특정한 나이에 다다르는 일은 성격상  도달의 의미를 지닌다. 

 "드디어 거기에 있는 것이다."(원문에서 'Da-sein.' 존재를 의미하는 

독일어 Dasein은 분리하면  '거기에 있다'의  의미이다: 옮긴이 주) 

늙어가는 일은 곧 놓아 보내는 일이다. 그러나 늙기의 목표는 도달이다. 

있는 그대로의 날를 받아들이고 나를 닦달하는 욕심을 놓아버리라. 

나의 에고를 놓아버리면 나 자신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에고를 놓지 않으면 절대로 자기에게 도달할 수 없다. 

에고가 진정한 도달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에고를 버릴 때에만 자신의 중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순간이 있는 것이다.  에고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한다.  

스스로를 변호하고 자기 고집을 내세운다. 그리고 언제나 자기 생각만 하느라 바쁘다.  

이런 에고를 가지고 나에 도달하는 것은 무리다.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고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도달할 수도 없다.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지음, 김진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