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속에서 지혜를 줍는 노인   

 
 

 "사람은 자신감의 키만큼 젊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 비탄, 생의 암울한 단계가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인우울증이  널리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노인우울증은  다양한 원인과 색채를 띤다.  

우울증이 오면 일단은  우리가 삶에 품었던 환상과 작별하라는 초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젊은 세대가 우리를 떠받들고 돌봐줄 것이라는 기대,  

마지막까지 발언권과 명령권을 가지고 싶은 욕심 등 

인생에서 내게 존재감을 주었던 것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 이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은 우울증으로  손을 뻗친다.  

그러면 자기 자신을  애도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노인우울증은 단순한 병이 아니다.  

이제까지의 삶에서 중요했던 것,  이제 노년이 내게서  앗아가는 것들을 

놓아 보내고 노년을 받아들이라는 초대다. 

노년이 앗아간 것들을 애도하고 애도를 통해 영혼의 밑바닥에 이르러 

노년이 준비해둔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하라는 우리 영혼의 초대다.

 
   

위에서 말한 슈바이처의 말은  노인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자신감이란 의지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슈바이처의 말을 비탄과 애도의 와중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풀어내고 싶다.  

노인우울증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일이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었고 

다른 세계에 발을 담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상이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년의 한부분일 뿐이다. 

우울증 때문에  영혼의 어두운 영역으로 들어선다고 해도 

내면의  어두움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본다면 곧  눈부신 환한 빛 속에서 웃을 날도 온다.  

우울증은  세상의 기쁨을 담담한 사실로 만든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지금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것들과도 

결국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김진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