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도 은혜일 수 있다  

주변에서 치매에 걸린 사람을 보고 나도 저 사람과 같은  신세가 되지않을까 
걱정해본 적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수도회의 형제들 중 치매 걸린 사람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실천의 부분이다.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자와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늙어서도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은 쉽게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100퍼센트 보장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활발히 집필활동을 하던 발터 엔스도 여든 다섯 살이 되자 갑자기 치매에 걸렸다.  
즉,  인간이 할수 있는 일은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데까지  노력하는 것뿐이다.  
또 다른 실천은 주님이 치매로부터 나를 지켜주실 것이라 굳게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100퍼센트 보장은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 말할 두 번째 방법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  방법은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다는 것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을 잃는다는 것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내게  정신적인 도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나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단지 생각하고 글 쓰는 능력,  깨어 있는 정신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 아니면 신인가. 
신으로 인하여 내가 나인 것이라면 치매는 나의 진정한 품위를 손상시킬 수 없다.  
치매가 손상시키는 것은 나의 에고일 뿐이다.
   
나는 칼 라너에 대해 박사논문을 썼는데, 
그가 죽기 얼마 전 죽음에 대해 한 강연의 내용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라너의 신학에서  죽음은 큰 부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라너는 그렇게 연구를 하고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음에도 
스스로의 죽음이 다가오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가 쓴 글에 보면 "평화롭고 맑은 정신 상태에서" 죽음을 맞기를 원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미 말했듯 이 문제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몫은 정해져 있다.  
라너는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러나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할 수 없는  무능의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럴 때에는 영원한 신의 사랑이 그 인간의 모든 책임을 거두어갈 것이다."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노환과 죽음이 닥쳤을 때는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다.  
죽음이 오기 전이더라도  치매에 걸려 자기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게 되면 
그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라너는 이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노년의 과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노환과 죽음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미리미리 하고 
그것이 닥쳤을 때 우리의 상태가 무능 그 자체일지라도 그것마저도 은혜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무능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은혜일 수 있다.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김진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