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사랑은 다르다    

옛순 남짓한 부인이 털어놓은 다음의 경험은 흔히 겪는 일이다.

"제 남편이  젊은 여자에게 빠졌어요.  그 여자가 자기가  평생 찾던 여자랍니다.  
우리는 36년 동안이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온 부부였는데 
이제 이 일로 우리 가정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어요."
나이 든 남자들이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아유가 있다. 
아내가 있어도 다른 여자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나이 든 남자들이 자신의  나이를 비껴가기 위한 방편으로  젊은 여자를 사귄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젊은 여자와 살면서 자신도 젊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을 속이는 일일 뿐이다.  10년만 지나면 젊은 여자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 아내의 젊음을 따라가야 한다는 부담에 스스로도 무리하게 된다.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의지로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남자 자신의 책임이다.  
내가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 여자의 내면에는 내 안에도 있는 어떤 것이 들어 있다.  
나는 그것을 이제까지 소홀히 해왔다. 그렇다면 그사랑은 내가 이제까지 소홀히 해온 
내 안의 그것을  돌보고 실현하는 숙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일깨워 주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어쩌면 36년을  살아오면서 내 아내에 대한 사랑이 무디어졌는지도 모른다.  
아내를 생각하면 더 이상 두근거림이나  떨림을 느낄 수 없다. 에로스의 힘이 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 찾아온 사랑은 아내에 대한 원래의 사랑을 다시 일깨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그 사랑이 36년 전과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사랑을 들이켜보는 일은  긍정적 작용을 할 것이다.
과거의  사랑을 회상하다 보면 상대방의 어떤 점에 그렇게 끌렸는지 기억날 것이다.  
그 좋은 점은 아직도 상대방의  내면에 건재하다. 
그저 그 안을 들여다보고 새로이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그 남자의 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까?  
일단은 비난을 삼가고 남편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서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책임이 있는 부부라는 것,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신의와 공정, 신뢰를 의미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부의 생활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한다. 
함께  파트너 테라피를  하거나  부부 상담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동안 긴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서로  
소원해진 것은 아닌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던 것,  
소홀히 했던 것은 무엇인지, 언제 어떤 상처와 실망을 느꼈는지 돌아보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부부 간에 이렇게 역사를 돌이켜보는 일은 때로 아픔을 동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것이다. 또한 부부의 역사를 돌이켜보는 일은 
사랑, 신의, 파트너십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된다.  

오늘을 사는 우리를  떠바치고 있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노년의 사랑은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더 이상 감정의 격한  동요에만 그치지 않고  상대를 지켜봐주는 것,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받아 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산다.  
노년의 사랑은 그 환상과 작별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치 깊은 행복감이 있어야만 
사랑이고 그런 느낌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것은 낭만적 환상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은 변화한다. 
사랑의 본질은 상대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데 있다.  
사랑은  상대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일 수 있도록  여유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고,  
사랑받는 사람은 그 공간 안에서 자신의 존재인 그 사람이 되어간다.
   
만일 서로의 관계가 너무  소원해졌거나 반복되는 싸움 때문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면 파트너십의 실패를 애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36년 동안 공들여 가꾸어온  인생의 시기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힘들다. 
그러나 애도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영혼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단지 자신이  남자의 아내로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것, 
자신이 세상에 다시없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 
단지 그 남자로 인해 자신의 가치가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김진아 옮김)